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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로그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은 뒷맛이 쓴 음식과도 같은 책이었다. 나는 책을 덮었을 때 충만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 좋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한편, 뒤끝이 쓴 소설이 대한민국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집의 처음 두 편인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를 읽고서 몇 달, 책을 덮어 두었다. 최근 들어 다시금 오직 두 사람을 펼쳐 단숨에 읽었다. 소설을 읽고서 문득 김영하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김영하 작가에 대해서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 머릿속에 김영하라는 사람은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글쓰기 책에서 그의 인터뷰를 보고는 내가 가졌던 생각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러고서 그의 소설집 오직..
극작품에 호감을 느끼는 데까지 책 다섯 권 분량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다행은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이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민음사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해설을 살펴보면 있음과 없음, 비워내기, 이분법적 사고, 극적 공과 같이 난해한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을 일일이 설명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나름 이해는 가도, 설명하려고 하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일 게 불보듯 뻔하다. 나름의 이해와 보편적인 이해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그래서 언제나 그렇듯, 내 수준을 고려한 눈높이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극작품, 리어 왕에 관한 썰을 풀도록 하겠다. 내게 극작품이란?리어 왕 전까지는 '필독 도서.' '어려운 책.' '지루해. '졸려.' 등이었는데, 리어 왕부터는 생각..
글쓰기가 한 권의 책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은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책들이 한 권의 책으로 글쓰기가 확 나아질 거라는 사기를 치고 있는데, 그런 책은 믿고 걸러도 좋다. 이런 형국이라서 나는 글쓰기 책에 얼마간 피로를 느껴 멀리하곤 했다. 책 한 권으로 글쓰기를 잘할 수 없다는 말에 많은 사람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대신, 글을 잘 쓰는 길로 가는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책은 종종 눈에 띈다. 나는 고전을 좋아한다. 내가 고전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을 기록했다는 점이 특히 좋다.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라는 책이 고전이다, 혹은 아니다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뚜렷하게 제시할 수는 없지만, 책이 출간된 지..
우리 누나는 오래 전부터 스티븐 킹을 좋아했다. 나는 소설에 빠져든지 4년 만에 그렇게 되었다. 지금. 그전에 스티븐 킹의 글쓰기 책(유혹하는 글쓰기)을 읽고, 나는 그를 조금은 허풍쟁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면에는 질투심이 있었다. 남자는 언제나 남자를 질투하니까. 나이가 많든 적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본다. 내 오랜 습관. 뭔가 그럴 듯한 말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냥 재미있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천재다. 악몽을 파는 가게' 가 더욱 특별했던 점은 단편 소설 앞머리마다 적힌 서문 때문이었다.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도 그렇고, 그게 아니라도 흥미롭긴 매한가지. 그렇지만 소설을 쓰는 습작생의 처지로는 환호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편마다 서문을 적어 놓은 책은 여태껏 본 적이..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이다. 그중 맥베스를 읽었다.앞서 읽은 오셀로, 햄릿과는 다르게 마녀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것이 좋았다. 알쓸신잡에 나온 김영하 소설가가 그런 말을 했다. 극작품 중, 비극은 상류층의 실수를 통한 이야기가 많고, 희극은 평민들의 이야기가 많다는. 듣고보니 그럴 듯한 얘기였다. 실제로도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모두 상류층 이야기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정하고 썼다기 보다는 재미있게 써 놓고 보니 그렇더라,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살다 보면, 어떤 평범한 삶이라도 운명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비단 본인만의 감각일 경우가 많다. 맥베스의 비극도 마녀 자매의 예언이 씨앗이 되어 일어난다. 어쩌면 꽤 오랫 동안 중립을 지켰을 그..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에서 자주 거론한 덕분에 알게 된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 마치 친한 친구가 새 친구를 소개해 준 느낌이었다. 친해지는 건 별개의 문제였지만. 레이먼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추리소설을 완성한 작가라고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그 하드보일드 문체 말이다! 그전부터 레이먼드 챈들러를 알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환영할 만한 책.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 형식으로 쓰였다. 작가와 독자가 소설 주인공인 필립 말로에 관해 의견을 주고 받은 내용도 있고, 전체적으로 작가 개인의 생각이 적잖이 드러난다.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칭얼거리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지인에게 보낸 편지를 편집해 책으로 만든 탓이려나. 나 역시 받아 주는 사람만 있다면 수시로 칭얼..
원래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했지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통해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까운 곳에서조차 제대로 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책에서 그런 부분을 충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책은 하루키 식으로 충실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문득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는 의미가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민 끝에 얼마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신뢰, 그리고 재미. 작가와 독자 간의 신뢰는 실제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확실히 시간이라는 자양분이 필요한 열매와도 같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일 수 있을지 모르고, 또 일부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
을 읽고 로맹가리를 알게 되었다. 아니면, 기억과는 다르게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했다는 식상한 광고 문구에 설득당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책에서 느낀 바가 많았다. 일말의 희망도 없어 보이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고아. 그 아이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로맹가리의 첫 책이 얼마간 지루하긴 했지만, 다음 책으로 안내할 만한 매력은 분명히 있었다. 해서 내가 읽은 로맹가리의 두 번째 책의 제목은 이다. 몰랐는데 단편집이더라. 을 집필한 로맹가리(에밀 아자르)보다 생기 넘치는 로맹가리를 만나볼 수 있었다. 글에서 이따금, 작가의 주체할 수 없는 젊은 향취가 묻어난다. 젊은이들이 흔히 가질 법한, 세상을 향한 조소 같은 것들. 불만스럽지만 혼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열혈 팬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문성해 시인에게 호감이 생겨 버렸다. 그전까지 어떤 작품을 감명 깊게 읽으면 그 글을 쓴 작가,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사람이야 어찌 됐든 글 자체가 좋았다. 취향에 잘 맞는 글을 만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 내가 변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리뷰니까 시에 관해 언급해야 하는데, 막상 기억에 남는 부분이 별로 없다. 다만 시인에 대한 이미지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물론 시인의 얼굴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보통 소년, 소녀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런 순수한 마음을 향한 동경 때문에 그들의 글이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눈을 감으면 두 눈 넘어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눈 뜨고 볼 때는 흐리멍덩한 세계..
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최근 3년 사이 같다. 그런데 시집을 읽고 리뷰를 쓰긴 또 처음. 그전에 안도현이 쓴 시작법 를 읽고 후기를 적은 게 전부다. 원래는 의식적으로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시를 읽곤 했는데, 그러면 금새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서 지금은 화장실에서만 읽는다. 뒷간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머니에게 "안도현 아세요?" 물었더니 안단다. 이 시집도 누나의 추천으로 읽게 된 것이 떠올랐다. 유명한 사람이면 좋은 시를 쓰겠지? 좋은 글을 읽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보자! 하는 마음을 장전하고 시집을 펼쳤던 것 같다. 읽는 동안 시인들은 '순수' 라는 것을 갈고 닦는 법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사물도 다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