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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로그
“밥 먹고 OO만 하면 누가 못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과거에는 나도 자주 쓰던 말이다. 나는 그동안 이 말을 몇 번, 행동으로 옮겼다. 밥만 먹고, 혹은 끼니도 거르고 PC게임을 했다. 마찬가지로 종일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나는 프로게이머가 되지 못했고, 영화감독이나 평론가는 물론, 여느 일에서도 내로라할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5년째인데 등단은 세상이 지어낸 허구처럼 느껴진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하나 달라진 것이 있었다. 관점.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며, 영화를 보며, 일하며,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다가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왜 노력해도 안 되는 걸까. 노력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재능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걸까...
책을 덮고,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유능한 창작 코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릭 메이젤. 25명의 창작자와 그들의 고민에 따른 코치의 혜안이 담긴 책이다. 선생의 지혜로운 코멘트를 살짝 엿보기로 하자. 가장 중요한 일을 필두로 2주간의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실행한다. 결과를 보고한다. 피드백 후 다시 3주간의 계획을 세운다. 코치의 요구 사항이 꽤나 간단해서 착각하기 쉽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결과, 절대로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았다. 나의 경우, 하고자 하는 일이 비교적 명확한데도 그랬다. 정신없이 삶에 치이며 하루하루 보내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우리는 누구나 꿈이 있다. 삶에 찌들어 잊고 지낼지언정. 결혼, 아이들, 직장, 인간관계 등의 행복을 위한 요소가 문득 삶의 커다란 장애물로 느껴진..
소설가는 소설 같은 삶을 산다. 좋은 소설은 본인의 삶을, 그중에도 반드시 값진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부가 캐릭터의 자양분이 되고, 내면의 깊은 숨결이 그가 쓰는 글자에 아로새겨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심, 그것. 누구나 진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나 소설가의 자질을 갖고 있다. 스스로 그 사실을 잘 모를 뿐. 여남은 형제를 가졌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아톰을 그린 작가는 데즈카 오사무다. 헷갈리지 마시길. 형제가 많다는 것은 그 수만큼 부모의 사랑을 쪼개 가져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9남매인 우리 아버지도 삶에서 많은 결핍을 드러낸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 수양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다 이해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시대가 다른 탓에, 다른 현실을 ..
처음부터 가벼움은 긍정, 무거움은 부정 따위의 철학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렇다. 철학을 가미한 소설이다! 아, 골이야.. 소설과 철학이 서로 떼 놓기 어려운 관계이긴 하지만, 쿤데라 씨는 대놓고 소설 안으로 치고 들어와 관념적인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할 말이 무척 많은 사람 같았다. 덕분에 우리가 소설을 읽는 동안, 원하든 그렇지 않든 작가의 친절한 설명과 늘 함께하게 된다. 자체 해설인지라 뒤에 딸린 해설이 없다는 점은 참 좋다. 주요 등장인물은 토마시-테레자, 프란츠-사비나 이렇게 네 사람이다. 짝 지운 대로 커플인데 토마시와 사비나도 연인 관계다. 말하자면 삼각관계. 토마시, 사비나는 서로 바람을 피우니 억울할 것도 없지만,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슨 죄란 말인가! 큼큼. 어쨌든 인물 관계..
사람들은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문장을 고민한다. 고민이라는 단어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고민하는 사람은 언제든 더 나아지게 마련이니까. 문장 능력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데, 나는 이 책이 꽤 두터운 독자층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문법의 중요성을 느끼고는 두 달가량 교정교열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꽤 흥미로웠는데, 수업과 이 책이 상당부분 겹친다. 20년 간 교정교열에 몸담은 프로의 책. 문득 교정교열 선생님이 저자의 다른 책인 ‘동사의 맛’을 언급한 것이 떠오른다.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는 실수를 되짚어 볼 계기를 마련하고, 미숙한 사람에게는 기초를 탄탄히 하는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어쨌든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읽어서 손해 볼 것 없겠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당신은 세상에 대해, 당신 자신에게 무심했으므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사는 남자다. 한 사람의 무심함과 사회의 부조리가 얽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몬다. 과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도 읽었는데, 이방인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재미있는 소설이 좋다. 나를 재발견할 단서를 제공하는 소설. 그러려면 뭔가 쇼킹하고 다소 짜릿함도 필요하다. 어쨌거나 결국 ‘이방인’에 몰입하긴 했다. 처음에는 지루했지만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뫼르소와 친해졌고, 차츰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무심함에 가장 큰 분노를 느낀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어떤 형태로든 타인이 반응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행여 그것이 부정이라 하더라도. ‘무심’은 ‘부정’보다도 한..
문장과 문장 사이, 혹은 문단(단락) 사이, 아니면 글 전체가 여백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글은 글 전체의 여백이 풍부한 글이다. 필자의 잡념으로 가득찬 글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무겁다. 좋은 문장에는 긴장감이 깃들어 있다. 문장에 압도되어 천천히 읽게 된다. 나아가 글 전체에 적절한 여백이 스며있어 단단히 묶인 느낌이 든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이 내게는 그랬다. 억지로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들, 그중 미묘해서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담겨있다. 하나의 이야기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때로는 카버의 글이 마냥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내 독서나 삶의 깊이가 부족한 탓이리라. 처음..
알고 보니 김영하 산문집 3종 세트에는 순서가 있었다. ‘보다-읽다-말하다’ 나는 ‘읽다’를 먼저 읽고 그다음 ‘보다’를 읽었다. ‘읽다’가 주로 고전 얘기라면, ‘보다’는 영화와 드라마가 반찬이다. 역사적 사건을 들추거나 경험을 슬쩍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건 후식. 역시 이 책도 김영하 작가의 독자적인 시선이 돋보인다. 재미있게 술술 읽긴 했는데, 책을 덮고 딱히 기억나는 건 없었다. 그저 내가 가진 생각을 확인하는 차원의 독서였달까. 작가와는 띠동갑 넘게 나이차가 나는데도 겹치는 영화, 드라마가 많아 신기했다. 지금이야 나도 웬만큼은 나이를 먹은 터라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작가가 들먹이는 대부분의 작품이 내게는 피 끓을 나이에 본 것들이었다. 주인공의 거친 말투와 옷차림, 섹..
유혹하는 글쓰기가 스티븐 킹의 책으로는 처음이었는데, 처음에는 사실 '뭐 이런 허풍쟁이가 다 있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재미는 있었다. 나도 소설을 끄적거리는 처지에서 보면 황당무계한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 같았다. 형편없는 작가는 괜찮은 작가가 될 수 없고, 괜찮은 작가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다니. 그래도 재미는 있으니 끝까지 다 읽긴 했다. 이것이 처음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은 독후감을 간추린 내용이다. 처음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을 당시에는 이따금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이 책이 내 글쓰기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은 내 독서 습관이 문제였던 것이다. 우연히 취향에 잘 맞는 한 권의 소설을 만나고, 몇 권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꽤 오랜 시간 의무적인 독서가 나를 따라다니며 괴..
김영하 작가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스토커 같은데.. 한 작가의 책을 두 권 이상 읽는 것은 호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혹은 의심이거나. 책을 덮은 지금, 여전히 김영하라는 사람에게 가졌던 호감과 의심이 줄다리기 하고 있다. 읽다-보다-말하다 세트 중 읽다, 보다는 아는 동생에게, 말하다는 누나에게 빌렸다. 보통 1-2-3처럼 순서가 정해진 책은 순서대로 읽겠지만, 김영하의 산문집처럼 개개의 이야기인 경우에는 내 멋대로 순서를 정한다. 아는 동생에게 빌린 책을 먼저 반납하고 싶은 마음에 읽다와 보다를 먼저 읽기로 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이후 곧장 '읽다'로 미끄러져 들어왔는데, 책을 덮고서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은근히 느껴지던 불편한 감정의 출처를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