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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_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똥의 진짜 위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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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_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똥의 진짜 위력!

부엉개 2019. 2. 18. 15:34

처음부터 가벼움은 긍정, 무거움은 부정 따위의 철학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렇다. 철학을 가미한 소설이다! 아, 골이야.. 소설과 철학이 서로 떼 놓기 어려운 관계이긴 하지만, 쿤데라 씨는 대놓고 소설 안으로 치고 들어와 관념적인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할 말이 무척 많은 사람 같았다. 덕분에 우리가 소설을 읽는 동안, 원하든 그렇지 않든 작가의 친절한 설명과 늘 함께하게 된다. 자체 해설인지라 뒤에 딸린 해설이 없다는 점은 참 좋다.






주요 등장인물은 토마시-테레자, 프란츠-사비나 이렇게 네 사람이다. 짝 지운 대로 커플인데 토마시와 사비나도 연인 관계다. 말하자면 삼각관계. 토마시, 사비나는 서로 바람을 피우니 억울할 것도 없지만,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슨 죄란 말인가! 큼큼. 어쨌든 인물 관계도만 봐도 편두통이 도진다. 네 사람 다 개개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다르게 말하면 상처의 네 가지 종류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는 말도 되겠다. 등장인물의 어린 시절과 내면에 대한 해부학적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우리와도 무관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이 소설이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은 모두 각자의 복잡한 사정을 안고 있다. 토마시-테레자는 주인공인 만큼 더 자세히, 사비나-프란츠 역시 세밀하게 그렸다. 등장인물들은 방황한다. 마치 우리처럼.


특히 남자라면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그래야만 한다!” 라는 강박. 주인공 토마시도 예외 없이 그런 강박을 안고 살아가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촉망 받던 외과의였던 토마시는 소련의 침공으로, 또한 테레자를 향한 지독한 사랑 때문에 직업을 버리고 단순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뭔가를 눈치 채기 시작한다. 보통의 삶, 단순함의 미학을. 토마시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무심했다. 그들은 그저 존재하는 ‘무엇’에 불과했다.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먹고, 싸고, 눈앞의 행복에 기뻐하는.


무심함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에서 주인공 뫼르소를 죽이는 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보이지 않는 악역이다. 소설 종반부에 이르러 뫼르소 눈에 비친 세계, 자연은 무심하다. 동시에 아름답다. 자신 또한 그런 자연을 닮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렇다. 뫼르소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 이 소설에서는 ‘무심(無心)’의 대상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데, 나(내면)-외부를 반의적으로 바라보면 비슷하다. 토마시의 눈에 비친 외부 세계는 곧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무심하다. 고로 아름답다. 촉망 받던 외과의사의 삶에서 유리창 닦이로 전락했지만, 그는 삶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시는 유리창을 닦다가 옛 동료 의사와 마주친다. 토마시는 유리창 닦는 자신을 창피해 한다. 나는 이 대목이 좋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 등장하는 네 주인공 모두 어디론가 끊임없이 도망친다. 각각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부터. 그들에게 ‘삶’은 사는 것이 아닌,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다만, 도망치는 여정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소설은 말한다.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은 사실 도피라는 행위 자체가 아닌, 그 고난의 여정에 속속들이 배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도망이라는 뜻을 품은 다사다난한 ‘삶’을 구원해 줄 한 가닥 빛은 아닐까.






그밖에도 소설은 사랑의 관점, 똥의 철학적 견해도 제시한다. 결과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 간의 사랑,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똥이 철학적으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키치를 파괴하는 똥의 위력이란! 똥의 철학적 내용 중에는 스탈린의 아들이 똥 때문에 죽었다는 일화도 들어 있다.


소설의 배경은 20세기 중반, 소련 침공 당시 체코의 프라하와 스위스 취리히를 오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폐해져 가는 체코의 모습을 조명했다. 보헤미아도 나온다.


소설은 철학과 관념, 이데아, 신화적인 내용까지도 포함하는데, 복잡하다면 가없이 복잡하다고 할 수 있겠다. 대신 캐릭터와 줄거리가 확실하기 때문에 굳이 소설 전체를 몽땅 이해하려고 애쓰며 읽지 않았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즐기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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