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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_인간 실격, 세상의 완전 범죄

부엉개 2019. 2. 19. 17:47

소설가는 소설 같은 삶을 산다. 좋은 소설은 본인의 삶을, 그중에도 반드시 값진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부가 캐릭터의 자양분이 되고, 내면의 깊은 숨결이 그가 쓰는 글자에 아로새겨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심, 그것. 누구나 진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나 소설가의 자질을 갖고 있다. 스스로 그 사실을 잘 모를 뿐.


여남은 형제를 가졌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아톰을 그린 작가는 데즈카 오사무다. 헷갈리지 마시길. 형제가 많다는 것은 그 수만큼 부모의 사랑을 쪼개 가져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9남매인 우리 아버지도 삶에서 많은 결핍을 드러낸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 수양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다 이해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시대가 다른 탓에, 다른 현실을 가진 탓에. 정신적 고통은 고통인지도 모르는 새 숙주의 몸을 지배한다. 우리는 모두 그 피해자임에 틀림없다. 






작가의 소설을 단숨에 읽고 난 뒤,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게 소설은 여타 책과는 사뭇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소설은 단지 장르가 아닌, 깊은 글을 뜻한다. 이런 종류의 글은 쓴 사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깊지 않고서야 좋은 글이 되기 어렵다. 유머러스하기로 소문 난 스티븐 킹의 글에도 진중한 삶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너무 감성적인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자세로 앉아 정중하게 말을 건네는 사람 앞에서 코를 후비거나 다리를 떨면 쓰겠나.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유약함으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 책임은 그의 부모한테도 있겠지만, 어쩌면 부모도 피해자일 수 있다. 결국 거의 모든 가해의 책임은 스스로 짊어졌다. 걷기도 버거운 사람 등에 쌀가마니가 얹힌 셈이다. 이런 사람을 돕는 순서라면 아이라도 알 것 같다. 우선 쌀가마니를 내리게 도와준다. 그다음, 온전히 설 체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준다. 혹은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돕는 것은 자신이 온전해야 가능한 일인데, 많은 현대인들이 비틀거리고 있다. 저도 치료가 필요한데 누굴 도우랴. 


죄인이라 한들, 자신에게 직접 피해 입히지 않은 타인을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죄질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소수의 극악무도한 악역에 관해서는 당연히 예외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비극의 역사를 보면, 피해의 주범은 대체로 심각한 피해를 비껴간다. 자기 욕심 챙기기에만 바빠도 끝끝내 살아남는다. 게다가 국가 대 국가 차원의 중대한 문제 앞에서도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운다! 전쟁을 쪼개면 그 안에서 적잖은 ‘국가 이기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침략이나 전쟁이 작게는 개인 이기주의가 팽창해 낳은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고한 시민’ 이라는 말이 익숙한데, 사실 ‘무심한 시민’ 이 걸맞을지도 모른다. 이는 정말로 무고한 시민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이면에 존재하는 음흉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빗댄 말이다. 오해 마시길. 정치에는 숨은 이야기도 너무 많고, 이해관계 역시 너무 복잡하게 얽힌 경우가 다수라 이쯤하기로 하자. 자고로 복잡한 것은 오해를 부르기 십상이다. 나는 단지 다자이 오사무가 살았던 시대가 더없이 난세였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유약한 한 사람의 상처 따위는 거들떠보기 어려울 정도로.


서글프지만 위로가 되는 것은 어려운 시기, 개 같은 상황에, 죽음을 벗 삼아 이토록 대단한 작품을 써 냈다는 사실이다. 용하다. 분명 그 덕은 후세가 톡톡히 본다. 행여 그의 작품이 자신이 저지른 죗값이라고 한다면 가만히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한편 이 작품이 그가 살고자 한 최후의 발악이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표정에는 말로 이루 다하기 어려운 속마음이 섞이게 마련이다. 표정도 하나의 언어인 셈이다. 우리는 거기에 이름을 지었다. 웃음, 울음. 무. 아무 것도 없는 무표정. 참으로 편리하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표정에서 속마음이 드러날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뱃속의 모든 감정을 얼굴로 그러모으기란 불가능한 일 아닌가.


서문에 등장하는 석 장의 사진. 등장인물인 작가는 그 사진 속 웃는 얼굴에서 괴리감을 느낀다. 표정 속 진실이 그의 눈에 스친 것이다. 


우리는 과연, 매일 마주하는 얼굴들에서 진짜 표정을 보는 걸까? 아니, 보려는 마음이 눈곱만치라도 있는 걸까. 웃는 얼굴 속에 가려진 진짜 표정, 그 서러운 울음을.






너무 칙칙한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 덧붙인다.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단번에 읽을 수 있는 흡인력 있는 소설이다. 일단 짧고, 일면 유쾌하기까지 하다. 주변에서 요조 같은 인물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괴짜이거나 그 사람을 보고 화가 치민다면 이 소설이 도움 될 것 같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 실제로 나는 몇몇 지인을 떠올렸고, 그들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싶어졌다.


다시 PS. 무라카미 하루키가 다자이 오사무를 존경한다고 하는데 알 수 없다. 다만 하루키 작가의 글을 보면 예의, -합니다만, 충실하게, 성실하게 따위의 단어가 자주 보이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먼저 태어났으니 하루키 작가가 영향을 받은 것이 맞을 것 같다. 단순히 번역자의 습관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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