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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로그
먼저 독서에 관한 생각을 했다. 재미있는 점은 한 권의 책을 열 사람이 읽으면 열 가지 새로운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물론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야 있겠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분명 다르다. 는 내게 몹시 어려운 책이었다. 소설만 고집하던 내게 인류 역사의 방대한 지도를 펼쳐 보이는 이 책은, 개인적인 관심사와는 동떨어진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눈을 반짝거리며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난생 듣도 보도 못한 용어와 역사적 사건들을 많이도 언급한다. 종속과목강문계,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 힘을 발휘했다. 망각하고 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사피엔스라는 명칭은 가장 하위 분류인 종에 속한다. 속은 호모, 종은 사피엔스. 우리도 여타 동물과 다를 것 없는 동물에 불과했다. 지금은 멸종한 다른 호모 속..
모처럼 우리나라 소설가가 쓴 책, 산문을 읽고 기분이 좋았다. 나와 얼마간 마음이 통하는 작가가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사실 좋다는 흔한 말로는 부족하지만, 그 외에 칭찬을 더해 본들 사족이 될 것 같다. 아껴가며 읽은 책이었다. 겉 표지가 두부 모양으로, 책이 꼭 한 모의 두부를 연상시켜 정겹다. 책을 읽을 때면 겉표지를 벗겨 놓고 읽는데, 의 겉표지를 벗기니 오돌토돌한 종이가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코를 들이대고 숨을 들이켰더니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완서 선생님. 연세 지긋하신 분이 쓴 글이지만 풋풋한 소녀 감성이 묻어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집안 얘기도 많이 나오고, 본인의 엉뚱한 생각과 사상도 제법 드러나 있다. 다른 세대를 살고 있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비교적 싼 가격에 얻게 되어 기분이 좋았던 책이다. 보통 소설집은 실려 있는 단편 중 하나를 책의 제목으로 채택한다. 김영하 작가의 도 다르지 않았다. 맨 처음에 오직 두 사람이 실려 있었다. 우선 앞의 두 편만 읽었다. 오직 두 사람 과 아이를 찾습니다. 이상하게도 내가 고르는 우리나라 소설은 우연이라 믿고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어두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번은 우리 소설을 특히 즐겨 읽는 지인한테 물어보니, 그녀는 우리 소설이 밝아서 좋다고 했다. 우울한 이야기는 싫어서 망설이다 책갈피에 서표를 끼웠다. 나중에라도 다시 읽을 마음이 생기면 읽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읽은 두 편의 단편 소설은 어딘가 아픈 사람들에 관한 소설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
오래도 읽었다. 두 달쯤 책을 부둥켜안고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소설이 끼어들기도 하고, 다른 급한 일이 새치기를 하기도 했다. 때로는 원 없이 늑장을 부렸다. 그만큼 내게는 어렵기도 했지만, 몹시 지루하기도 한 책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고요함을 느끼게 해주는 산문. 헤르만 헤세가 실제로 정원을 가꾸며 보낸 시간 동안 적은 글들을 하나로 묶은 값진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수필은 처음이었다. 이름 모를 자연의 구성원들이 많이도 나온다. 식물도감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모르는 식물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글에서 작가의 소년 같은 마음과 고뇌를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헤르만 헤세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적잖이 지쳤을 것이다. 푸르디푸른, 젊은 영혼의 ..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좋다. 를 읽는 동안 더 좋아진 것 같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 문장을 보며 방대한 어휘력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를 돕는 많은 인력을 떠올렸다. 세계적인 작가인 하루키를 옆에서 서포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정보원들부터 해서 교열자, 편집자. 그리고 친구들. 어쨌거나 글을 읽으며 연신 대단한 소설가라는 생각을 했다. 도 그랬지만, 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좋지 않은 평을 늘어 놓는 사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가 재미있었다. 즐겼다는 말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대중성도 가미되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내면으로의 탐구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장(에..
소설에서 나를 닮은 주인공을 찾아낸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와타나베, 의 남자 주인공. 그의 색을 정하자면 회색으로 하고싶다. 옅은 회색. 순수함을 나타내는 하얀색에 검정이 아주 조금 섞인 색. 삶과 죽음은 극과 극이 아닌, 삶이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는 주인공의 생각은 스무 살의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둡다. 그래서 슬프고, 울적하고, 고독하다. 왜 장미빛으로 물들어야 할 청춘이 이다지도 고독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소설이 말하고 있다. 조금 이르게 찾아온 고독이 소년의 삶을 무너뜨릴 지도 모른다. 그렇게 줄타기를 하며 소설을 읽었다. 많은 소설이 그렇듯 명확한 끝은 없다. 삶이라는 연장선 위에 놓인 이야기. 가끔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 되묻는 때가 온다. 삶은 두근거림으로 다가올 때도 ..
소설이든 수필이든, 어쨌거나 글이라면 쓴 사람의 손을 떠나면 읽는 사람의 것이 된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글이 좋은 힘이 될 수도,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볼 때, 어떤 글이 많은 노예를 해방하는가 하면, 또 어떤 글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라는 소설이 내 인생에서 큰 파도를 일으킨 것은 분명한데, 그것이 긍정적일는지는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지금껏 책을 읽고 확신이 생기면 너무 맹신했던 경향이 있었다. 주인공은 중년의 나이에 책임을 다하고 가족을 떠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책임을 다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내의 처지에서 보면 나쁜 남편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달과 6펜스를 처음 읽을 때 이런 점을 높이 샀다. 오래된, 아주 가까운 인간관계를 포기할 수 있을 만큼, 가장으로서의 ..
축축하고 어둡고, 가끔 햇빛이 들긴 하는 것도 같은데 부족하다. 납치당하는 것으로 삶을 시작한 한 소녀.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에 너무 가혹한 일이 펼쳐진다. 이미 아저씨가 된 나도 못 견딜 것 같은 일들을 어린 소녀가 견뎌낸다. 가슴이 먹먹하다. 너무 어두워서 현실성이 없어 보일 정도. 가끔 집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상상을 한다. 실제로 잠깐 그런 경험도 있었다. 다 늦게 한 가출은 곧 눈칫밥이었다. 2주쯤. 아주 친한 형 집에서 지냈는데도 불편했다. 그 불편한 생활이 쭉 이어진다고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만큼 가족이 없고, 집이 없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갓난아기 때 납치당한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그녀가 남겨 놓은 발자국을 따라 이야기가 쓰인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산 넘..
소설이 소설답다는 건 무엇일까.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깨달음? 재미? 아니면 시간 때우기? 잘 모르겠다. 내가 그나마 생각한 소설에 대한 답은 '그냥'이었다.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평범한 이야기는 우선 재미가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로알드 달의 소설은 대부분 재미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재미에 초점을 둔다. 대부분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그의 주제다. 최근 읽은 소설들이 모두 지독한 현실을 다루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로알드 달의 은 나름 힐링이었다. 은 여러 단편을 엮어놓은 단편집이다. 구성이 아주 알차다. 실화를 바탕으로 적어놓은 소설과 허구적 이야기가 뒤범벅되어 있다. 그가 소설가가 된 이유와 그의 첫 번째 소설도 수..
시도 글쓰기라면 글쓰기라서 여기에다 적어보려고 한다. 언젠가 안도현 시집을 들고 소설책처럼 쭉쭉 읽어내려간 기억이 났다. 왠지 시는 한 문장, 또 한 문장, 이렇게 읽어야 할 것 같지만, 그 일이 좀처럼 쉽진 않았다. 그렇게 절반쯤 읽어 놓고 문제의 시집 '북항'은 내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다 얼마 전 안도현이 적은 시작법을 손에 넣게 됐다. 안도현의 시작법이 시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절반은 시집이나 다름없었다. 여러 시인의 시를 짜깁기 한. 시를 쓰는 방법을 얘기하려면 예문이 필요하니까.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제목도 시인답다. 막상 책을 덮고 남는 기억은 별로 없지만, 당시에 대충 읽진 않았다. 깐깐한 선생님처럼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질책도 하고, 어머니처럼 따뜻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