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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로그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등장해 핫한 키워드가 된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유행이야 어찌됐든 자존은 중요한 문제다. ‘자존감’은 ‘자존심’과 사뭇 다른 뉘앙스로 쓰이곤 하는데 사실 자존감이든 자존심이든 ‘자존’의 의미는 같다. 허무하다. 그렇지만 특정 단어가 사람들 인식에 어떻게 박였는가는 의사소통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쨌든 나는 단순하게 ‘마음’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건강한 마음. 삶에 있어 마음의 건강은 몸의 건강만큼이나 중요한데, 우리는 때때로 그런 사실을 망각한다. 책에 좋은 내용이 많아 수긍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많은 책에서 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자존감 수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이 말이 좀 못마땅하다. 애초에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
소설을 읽으며 한 마리 곤충이 된 기분을 상상했다. 윽, 벌레 그만 때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벌레 학살자다. 같은 언어로 말하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험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 같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갑충으로 변한 뒤 인간의 언어를 차츰 잃으며 얼마간 인간성도 잃어간다. 사람이 얼마나 다른가 하는 풍자로 볼 수 있다. 또한 본능적인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송’보다 짧은 단편 소설임에도 임팩트 있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나를 생각해 보았고, 이 개념을 사회구성원인 나로 확장할 수도 있다. 본질적인 나에 관해서도. ‘변신’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운 좋은 사람이야 훌륭한 아버지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변신에 등장하는 아버지처럼 미성숙한 아버지를 뒀다. 고집..
아주 오래전 책의 제목만 보고 골랐던 책이다. 최근 다시 읽었다. 과거에 흥미롭게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람은 결국 책보다 자신의 관점을 더 믿어야 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반드시. 훌륭한 책이라도 다시 읽게 되면 미심쩍은 구석이 보이게 마련이다. 이럴 때는 한 번쯤 독서를 멈추고 생각해봐야 한다. 해라, 해라, 하는 책은 별로인데 이 책도 유난히 하라는 게 많았다. 책을 다 읽고 뭔가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책인데 이는 경험상 독서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자기계발서라면 흔히 발견되는 특징 같다. 많은 자기계발서가 부모님의 잔소리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그나마 좋은 자기계발서는 흥미로운 동시에 실생활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어야 ..
글이 너무 잘 읽혀서 당황했다. 단락 하나가 한 페이지를 잡아먹는 것은 예사고, 등장인물의 대사가 한 페이지를 넘을 적도 많은데. 페이지를 빽빽하게 채운 답답한 모양새와는 달리 술술 읽힌다는 점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오해를 만나며, 또한 바로잡게 된다. 오해는 외부에 의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내부에서 시작되는 오해가 더 치명적이다. 그밖에도 개인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어려움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 ‘소송’을 통해 개인의 오해와 착각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요제프 K는 거만하고 냉소적인 면을 가진 젊은이로 얼마간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소설은 젊은 날에 이른 성공을 거둔 젊은이의 지표로 요제프를 꼽고, 그 안으로 들어가 속사정을 파헤친다. 막..
설레는 가슴을 안고 책을 펼쳤다. 읽다 보니 잘 구성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스만제국의 세밀화가 이야기였다. 오스만제국? 중학교 수업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다. 한편 러브스토리와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추리 소설적 측면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며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액자 형 구성으로 딸린 이야기가 많다. 표면적으로 흘러가는 스토리라인과는 별개로 여느 훌륭한 소설이 그렇듯, 내부의 보이지 않는 줄기도 느껴졌다. 평소 소설만은 일부러 천천히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이 소설은 따로 노력이 필요 없었다. 읽히는 게 너무 더뎌서 읽기 능력을 의심할 정도였다. 중간에 시험 삼아 아껴두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펼쳤는데 내 능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단순히 어려운 소설이라..
최근에 재미있게 읽고 한 번 더 훑어본 뇌 과학 책이었다. 이 책이 왜 이렇게 흥미로웠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뇌가 그러그러하니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것보다 조금 더 말랑말랑하긴 했지만. 그동안 무의식 깊은 곳에서 빛을 보지 못하던 무형의 것들이 얼마간 실용적인 것으로 탈바꿈한 기분이 든다. 즉, 뇌를 읽다라는 책이 내 무의식에 먼지처럼 흩뿌려진 일부를 빨아들이는 청소기 역할을 한 것 같다. 막연한 진실 하나가 있다고 가정하자. 나는 그것을 다방면으로 이해하려는 무수한 노력이 따랐을 때야말로 무형의 진실이 본연의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나는 답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열심히 출근해서 돈을 벌고, 결..
4년 전 읽고 적잖이 영향을 받았던 책이다. 최근 다시 읽어 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사각지대가 보이는 느낌? 사람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사람의 열 가지 장점보다는 한 가지 단점을 찾아내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대할 때만은 더없이 관대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4년 전에는 책이라는 물건의 정체성을 제대로 몰랐었다. 책의 정체는 둘째 치고 나의 정체성을 몰랐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겠지만. 책의 맹점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았다. 이 두 가지는 사람에 따라 사소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첫 째. 책에서 자주 인용했던 속담 중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독자는 으레 주인 역할만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대도서관. 그 닉네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취업준비를 하던 때였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당시 나는 그를 전혀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유튜브가 대중화 되면서, 또한 유튜브 영상을 올리고부터는 모르고 싶어도 모르기 어려운 인물이 대도서관이었다. 평소 책을 밥 먹듯 사는 누나 덕택에 집안 곳곳에 책 광고 전단이 굴러다닌다. 나 역시 책에는 호기심이 있는 편이라 책 전단지만은 훑어본다. 거기에 ‘유튜브의 신’ 광고가 적혀 있었다. ‘나는 1년에 17억 번다!’ 이렇게. “카피가 이게 뭐야. 사려다가도 말겠네.” 내가 말했다. 누나가 멋쩍은 미소를 띠었다. 알고 보니 집에 유튜브의 신이 있었다. 가볍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 자기계발서. 하지만 초중반은 에세이 느낌으로 쓰였고, 대도서관이라는 캐..
내가 어떤 종류의 독후감을 쓸 수 있을지 더 명확해진 기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우물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우물. 소설가는 우물 안에 들어가 물을 떠 오는 사람이다. 귄터 그라스는 제법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온 듯했다. 너무 깊은 곳에서 떠다 나른 물은 얼음처럼 차가워서 좀처럼 마시기 어렵다. 양철북이 내게는 그랬다. 물의 참맛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소설마다 퍼 올린 물의 온도가 다르다. 소설을 고를 때는 자신의 체온과 비슷한 작품을 고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약간은 더 차가워도 괜찮겠지만. 나는 스스로 너무 과신해서 단번에 어려운 책을 펼쳐 들곤 했는데, 왜 그때마다 책을 덮어야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양철북이라는 깊은 우물물을 절반쯤은 다시 뱉어내며 마셨다...
‘말하다’를 끝으로 김영하 최신 산문 삼부작을 다 읽었다. 작가는 젊은이들의 막막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했다. 비판보다는 칭찬이 필요하고, 누구나 가슴 속에 ‘어린 예술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 예술가라. 가능성만을 생각하면 사람이 모두 대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상황과 환경이 다를 뿐. 산문은 단연 우리 것이 좋다. ‘말하다’를 통해 다시금 그런 생각을 곱씹었다. 언어적 미묘함 때문일 것이다. 번역서와 우리나라 작가의 책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 반대로 우리 작품을 수출하는 데 있어서도 고유한 문체가 훼손되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작생인 동시에 막막한 처지의 한 젊은이로서 위로 받았다. 5년 동안 습작과 일을 병행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소소한 시도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