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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읽다: 뇌 가소성, 물리적인 뇌의 변화!

부엉 군 2019. 4. 29. 16:35

최근에 재미있게 읽고 한 번 더 훑어본 뇌 과학 책이었다. 이 책이 왜 이렇게 흥미로웠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뇌가 그러그러하니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것보다 조금 더 말랑말랑하긴 했지만.

 

그동안 무의식 깊은 곳에서 빛을 보지 못하던 무형의 것들이 얼마간 실용적인 것으로 탈바꿈한 기분이 든다. 즉, 뇌를 읽다라는 책이 내 무의식에 먼지처럼 흩뿌려진 일부를 빨아들이는 청소기 역할을 한 것 같다.

 

막연한 진실 하나가 있다고 가정하자. 나는 그것을 다방면으로 이해하려는 무수한 노력이 따랐을 때야말로 무형의 진실이 본연의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나는 답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열심히 출근해서 돈을 벌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동안. 또 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날 동안. 물리적으로는 5년이라는 시간을 읽고 쓰는 데 썼다. 물론 충분하지는 않지만 여가 시간도 가졌다. 스스로 그렇게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시원하게 설명할 만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단지 이러는 게 맞다고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흔히 머리로 생각한다, 마음으로 느낀다는 말을 하는데. 책에 따르면 머리는 의식을, 마음은 무의식을 가리킨다. 실제로는 그리 단순하지 않지만 일단 수긍이 갔다.

 

 

 

 

 

최근 몇 년 나는 대부분 읽고, 쓰고, 생각하며 삶을 이해하려고 애썼는데, 그런 부분과도 당연히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최고의 성과 신경전달물질인 DNA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전자 DNA가 아닌,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아세틸콜린의 약자다. 도파민은 쾌감, 중독, 보상에 관여하고, 노르아드레날린은 집중력과 기민성을 높여준다. 아세틸콜린은 영아기에 대량으로 분비되는 학습 신경물질로 설명이 명쾌하지는 않았다.

 

즐거움이란 한 사람의 이데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에게는 각각의 고유한 이데아가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이데아란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말한다. 보편적으로 어떤 사물 본연의 가치라고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오랫동안 수학한 결과 나는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찾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흔히 우리는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받았는데, 나는 앞서 말한 경험을 통해 이것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동기부여나 즐거움을 위한 약간의 망상은 괜찮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다. 소위 비현실적인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말이 앞서고, 행동이 부랴부랴 말을 뒤따르게 되는 버거운 일이다. 이런 루틴을 반복하다 보면 자기혐오라는 함정을 피할 수 없다. 스스로 한 말도 지키지 못하는 가벼운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온 힘을 쏟아 큰 그림을 그린 뒤, 시작하기도 전에 탈진하는 일도 여러 번 경험했다. 내게는 무척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저마다 다르므로 다른 사람의 여정이 어떨는지는 잘 모르겠다.

 

흥미와 즐거움을 키워드로 잡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사람마다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흥미 요소가 다를 것 같다. 여기서는 쾌락과 보람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를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각자 자기 삶을 두루 살피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대량의 도파민을 만들어 낸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개인적인 즐거움과 쾌락에 관해 고민했고, 어느 정도는 그것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만약 최근 몇 년, 내가 다른 삶을 살았다면 이 책에서 현재만큼 성취를 확인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점은 간단하다. 작지만 꾸준히 갱신할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타인의 인정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일이어야 한다. 하루하루 알차게 만족스러운 삶을 꾸리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미 출발선은 통과한 셈이다.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는5년쯤 되었는데, 매일 아침 꾸준히 쓰기 시작한 것은 두 달 밖에 안 되었다. 두 달 동안 초고를 다섯 개나 끝냈다. 원래 대로였다면 1년은 족히 걸릴 일이다. 글이 안 써져 고민하던 때를 생각하면 행복한 고민이다. 한편 지난 5년 동안의 고뇌가 허무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뇌는 죽기 직전까지도 성장할 가능성을 지녔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별로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겠는데, 당장 유튜브만 뒤져봐도 뇌 가소성에 관한 검증된 이야기들이 많다. 또한 지금껏 내가 경험한 삶이야말로 내게는 어떤 증거나 검증, 연구 결과보다도 값지고 생생하다. 늦어도 20대 초반이면 성장을 끝내는 우리의 몸을 생각하면 당장 벌거벗고 뛰어다녀도 시원찮을 일이다. 우리의 신체는 성장은 고사하고 퇴화하기 때문이다.

 

한편 대부분의 사람이 뇌의 10%이하만 사용하다 죽는다는 말은 사실무근이다. 이 말이 널리 퍼진 이유는 그만큼 뇌의 긍정적인 성향을 활용하는 사람이 적다는 데 있다고 본다. 나 역시 얼마간 그런 사람이었다.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에 있어 경계가 뚜렷했다. 지금도 완전히 그런 성향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 때문에 바뀐 변화라고는 생활의 소소한 부분뿐이지만 나는 이 사소한 변화가 머지않아 적지 않은 것들을 바꿀 거라고 믿는다. 이 책은 이런 사소한 습관에 관해서도 다룬다.

 

 

 

 

 

마치며. 멀티태스킹이 아직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한 번에 하나씩’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물고 다녔다. 하물며 소설에서조차 성실한 주인공이 나오면 괜히 호감이 가곤 했다. 나도 날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재능이라는 것을 더 신뢰했다. 생활하는 가운데 넘어지고 깨지며 깨달은 생각이다. 몰입이 집중의 상위 버전이라고 가정할 때, 멀티태스킹은 우리의 몰입을 방해할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산만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와 실례가 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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