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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로그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 책, 달과 6펜스를 읽기 전까지. 이 책은 내가 3년 전 쯤 읽은 책이다. 서른이 넘고, 인생에 대한 단 맛, 쓴 맛을 어느 정도 맛보고 난 뒤에야 달과 6펜스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책의 재미에 대해 안다고 묻는다면, 아니오다. 이제는 나 자신의 생각을 그리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인생을 바꾼다고 하면 거창한 것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노총각이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다거나, 결혼을 꿈꾸는 노처녀가 인적이 드문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멋진 남자와 이어진다거나 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실제로 내가 군인이던 시절, 나는 성공서적만을 읽었다. 부모님이 보내준 여러 종류의 성공서적을 읽으며, 군대 말년..
복잡한 인생사와 머리아픈 일, 특히 돈 문제. 인간 관계. 이 모든 족쇄에서 잠깐이나마 자유를 맛볼 수 있는 일들은 많지만, 내게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기욤 뮈소라는 이름은 여러번 들어봤다. 아주 유명한, 젊은 프랑스 작가. 그 정도만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살아있는 작가가 쓴 소설은 별로 읽어 본 기억이 없어서, 그의 소설 역시 단 한 권도 읽어 보지 못했다. 나는 고전 소설을 주로 읽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책부터 차례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러다가 현대소설은 평생 읽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책장을 살폈다. 기욤 뮈소의 '구해줘'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이 두 권이 눈에 들어왔다. 두..
여러 사람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모두 다르다. 나이를 더 먹어 갈수록 나는 더 모르겠다. 단편 소설의 거장이라고 하는 안톤 체호프라면 슬쩍이라도 그 답을 보여 줄 것도 같아 책을 읽게 되었다. '사랑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여러 편이 묶여있는 이 책은 펭귄클래식의 마카롱 에디션이다. 지금 내 등 뒤 책장에 마카롱 에디션 몇 권이 꽂혀있는데,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나의 독서 패턴은 항상 제멋대로다. 재미있게 읽던 책도 6개월 뒤 침대 밑에서 발견하곤 한다. 단편집은 더욱이 그렇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난 듯 싶으면, 책갈피를 꽂아 놓고 다른 책을 펼쳐든다.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도 그랬다. 수 개월 전에 책갈피가 꽂힌 채 덮여, 먼지 쌓인 채로 발견되었다. 그래서인지 역시나 앞의 내용이 까마득히 ..
이들이 여행하는 동안 나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몇 달 동안 틈틈히, 조금씩 책을 읽어나가서 그런 것 같다. 오랫동안 덮어 놓았던 책은 내용이 가물가물 할 법도 한데, 어째서인지 책을 펼치면 몇 달 전 읽었던 내용이 새록새록 머리를 간지럽힌다. 지구 속 여행은 꽤나 두툼한 책이다. 나도 평소에 여행을 꿈꾸긴 하지만, 귀차니즘 때문에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여행 관련 서적도 싫어한다. 다행히 지구 속 여행은 여행 서적이 아니라 소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본론인 지구 속 여행을 하기까지의 서론이 조금 지루했지만,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주인공인 리덴브로크 교수와 악셀, 그 둘은 삼촌과 조카지간이다. 리덴브로크는 저명한 교수, 악셀은 평범한 소년. 소년은 교수의 말을 아주 잘 따른다. 그러고 ..
원래 소설을 읽던 습관처럼 해설을 읽지 않았다. 뒤엉킨 생각들 사이에 소설의 줄거리는 드문드문 기억나는 게 고작이지만, 가슴 깊은 한 숨이 새어 나온다.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이렇게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나무 불꽃을 다 읽고 책을 덮은 참이다. 항상 책을 읽고 나면 한숨이 새어나온다. 내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이제 한숨이 다 같은 한숨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안다. 전율을 느끼며 뒷덜미가 저릿한 한숨이 있는가 하면, 허무감에 저절로 새어나오는 한숨도 있다. 때로는 나 자신도 모르는 그런 한숨을 버릇처럼 쉴 때도 있다. 내가 채식주의자를 덮고 쉰 한숨이 어떤 것이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율은 아니었다. 당장 하루를 살아야 하는 막막함에서, ..
정말이지 멍청한 실수를 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연작소설, 즉 하나의 소설이나 다름 없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아빠가 내게 선물해줬다. 내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했을 때,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고 말 했던 아버지의 말투가 생각난다. 연작소설이라고 작가이름 옆에 떡하니 써있는데, 왜 세 개의 제목을 가진 세 개의 이야기 중 하나만 읽고 단편 소설이라고 단정 지었을까. 그 전에도 이런 단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 였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세 개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소설이다. 세 이야기 중, 두 번 째인 몽고반점의, 화장품 가게를 한다는 채식주의자 영혜의 언니가 등장했을 때에는 뒷통수를 세게 후려맞은 것 같았다. 동시에 나의 섣부름 때문에 자괴감에 빠졌다. 한강의 소설은 잘..
읽기 전까지는 단편인줄 몰랐다. 한강이라는 작가가 쓴 채식주의자는 단편소설이다. 나는 채식주의자를 읽는 내내 꿀꿀했다. 뭔가 음침한 분위기와 지루하고 답답한 기분. 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여러 단편 소설을 읽어 봤지만 읽어 본 단편 소설 중 가장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으로 남는다. 평범한 가정. 그리고 한 부부. 내게있어 평범함이란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부부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내외는 그렇지가 않다. 소소한 만족, 작은 불만, 그것들이 쌓여있고, 서로에 대해 깊이 알려하지 않는다. 표면적인 부부. 닫힌 마음. 그런 부분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생각하게 했다. 불만이 있지만 끌어 안은 채 살고있는 우리. 속독해서 그런지 채식주의자의 내용이 진하게 머릿속에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