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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The Moon And Sixpence, William Somerset Maugham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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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The Moon And Sixpence, William Somerset Maugham

부엉개 2016. 11. 17. 16:18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 책, 달과 6펜스를 읽기 전까지. 이 책은 내가 3년 전 쯤 읽은 책이다. 서른이 넘고, 인생에 대한 단 맛, 쓴 맛을 어느 정도 맛보고 난 뒤에야 달과 6펜스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책의 재미에 대해 안다고 묻는다면, 아니오다. 이제는 나 자신의 생각을 그리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인생을 바꾼다고 하면 거창한 것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노총각이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다거나, 결혼을 꿈꾸는 노처녀가 인적이 드문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멋진 남자와 이어진다거나 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실제로 내가 군인이던 시절, 나는 성공서적만을 읽었다. 부모님이 보내준 여러 종류의 성공서적을 읽으며, 군대 말년의 무료함을 이겨냈다. 억지로 책을 읽음으로 나는 꽤 유식해 진 것처럼, 책이 말하는 대로 행동했다.

 

지금은 성공서적을 쳐다도 안 본다. 이유인 즉, 많은 성공서적들이 말하는 것들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순히 그런 내용들이 나와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위해 정해진 법칙들. 그런 것들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어쩌면 군시절 그 많은 성공서적들을 읽은 것이 내 의지가 아닌, 부모님의 생각대로 놀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때는 정확한 내 의견 없이 어머니께 책을 골라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을 전적으로 믿었다. 

 

달과 6펜스는 내가 고른 책이다. 서른이 넘은 나이, 몇 번의 실패, 막다른 길. 나는 인생을 반듯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얻길 좋아했다. 그것이 가족일 때도 있었고, 친구, 선배일 때도 있었다. 매 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만족스런 대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이 내 인생을 바꿔주지는 못했고, 결국 나를 막다른 길로 내몰았다.

 

더이상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거실 쇼파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책장에 무수히 꽂힌 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천천히 나는 그 책들의 제목을 눈으로 훑었다.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많이 들어본 제목과 이름인데, 정작 그 작가가 어느나라 사람이고, 어떤 내용의 책을 썼는 지는 몰랐다. 지금껏 이런 책 한 권 읽지 않고 뭘했지 생각했다.

 

책을 꺼내들고, 억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하는 일도 없었고, 인생이 무료하고, 다 끝난 것 같고 하는 마음 뿐이라서 책을 읽는 시간 역시 그리 아깝지 않았다. 십수 년 책을 놓고 지냈는데 책이 술술 잘 읽힐 리 없었다. 문장은 춤을 추고, 눈꺼풀은 무거웠다. 하지만 억지로 눈을 치켜뜨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서머싯 몸의 문체는 투박하다. 또 고지식한 면이 있다. 팔팔 끓는 물로 타 놓은 믹스커피가 차갑게 식을 즈음, 나는 일종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작가가 써놓은 소설의 주인공이 내가 바라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가 된 것 마냥 나를 저술해 놓은 책을 읽었다. 책을 덮은 것은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뒷덜미가 찌릿해 진 후였다.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자전거를 처음 배운 어린아이처럼 신났다. 그 순간 만큼은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표면적으로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나의 길을 이미 찾은 것 같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소설에는 관심도 없던 삼십 대 백수가 소설과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책을 다 읽고 기분좋은 흥분에 젖어 며칠을 보낸 것 같다.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의 겉표지만 봐도 행복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의 길을 찾아 가야 하는데, 주인공은 자신이 염원하던 일이 원래 있었다. 그 꿈을 수십 년 동안 간직한 채 책임을 다해 살다가 어느 정도 자신의 책임을 다한 뒤 떠난다. 자신의 꿈을 향해.

 

나는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었지만, 서른이 넘도록 나의 꿈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보니 책과는, 소설과는 조금 친해진 것 같다. 나는 우연히 달과 6펜스를 만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지만, 다른 분들은 또 다를 것 같다. 누구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나처럼 흥분할 지도 모르고, 어떤 이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일고 그럴 지도 모른다. 또, 그 범위가 꼭 소설이 아니라 인문 서적일 수도 있고, 수학의 정석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여전히 대외적인 활동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고,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신다. 그렇지만 책읽기라는 취미가 하나 늘었다. 달과 6펜스를 시작으로 힘들 때면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때로는 자신을 위로하며, 몰랐던 나 자신을 알게 해 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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