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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무 불꽃, 한강

부엉개 2016. 10. 28. 19:36

원래 소설을 읽던 습관처럼 해설을 읽지 않았다. 뒤엉킨 생각들 사이에 소설의 줄거리는 드문드문 기억나는 게 고작이지만, 가슴 깊은 한 숨이 새어 나온다.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이렇게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나무 불꽃을 다 읽고 책을 덮은 참이다. 항상 책을 읽고 나면 한숨이 새어나온다. 내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이제 한숨이 다 같은 한숨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안다.


전율을 느끼며 뒷덜미가 저릿한 한숨이 있는가 하면, 허무감에 저절로 새어나오는 한숨도 있다. 때로는 나 자신도 모르는 그런 한숨을 버릇처럼 쉴 때도 있다. 내가 채식주의자를 덮고 쉰 한숨이 어떤 것이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율은 아니었다.


당장 하루를 살아야 하는 막막함에서, 내일의 걱정거리에서, 팍팍한 오늘에서, 흘러나오는 한숨과 비슷했다. 그것은 절망과도 닮아있는 한숨이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가깝지만 서로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실과 그 무엇도 아닌 세계의 경계에 있는 인물, 이제 막 그 경계를 넘어간 인물, 이미 경계를 넘어버렸지만 그 사실을 숨긴채 살아가는 인물. 인물의 내면에 관한 묘사와 서사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껏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아니면 그와 다른 세계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채식주의자에서는 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데, 언젠가부터 꿈은 내게 잠재의식의 조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책 말고도 꿈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많이 있지만, 무엇도 나의 무심한 머릿속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채식주의자는 내 안에 커다란 파도를 일게하지는 못했다. 취향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랬다. 너무 어둡고, 현실적이었다. 누구든 어두운 면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에,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어떻게라도 행동을 취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경우 그것이 정신이상으로 나타 날 수도 있는데, 그 정신이상이라는 것 자체도 우리가 정해놓은 기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 끝에는 무엇이 있을 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되는 책이었다. 


채식주의자는 지금 나의 삶, 똑바로 걷고 있는지 의심하며 걸어가는 내 보잘것 없는 삶이 작은 숨을 내쉬는 것 만으로도 가치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시 한 번 채식주의자를 읽어보고 다음 번에는 조금 더 깊이있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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