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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단순한 삶의 미학 본문

문화·연예/책

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단순한 삶의 미학

부엉개 2018. 1. 23. 00:11

오래도 읽었다. 두 달쯤 책을 부둥켜안고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소설이 끼어들기도 하고, 다른 급한 일이 새치기를 하기도 했다. 때로는 원 없이 늑장을 부렸다. 그만큼 내게는 어렵기도 했지만, 몹시 지루하기도 한 책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고요함을 느끼게 해주는 산문. 헤르만 헤세가 실제로 정원을 가꾸며 보낸 시간 동안 적은 글들을 하나로 묶은 값진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수필은 처음이었다. 이름 모를 자연의 구성원들이 많이도 나온다. 식물도감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모르는 식물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글에서 작가의 소년 같은 마음과 고뇌를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헤르만 헤세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적잖이 지쳤을 것이다. 푸르디푸른, 젊은 영혼의 불꽃이 힘없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며 얼마나 무력함을 느꼈을까.


시대는 언제나 시기적 갈등을 안고 있는 것 같다. 언뜻 보면 우리가 사는 시대가 평화로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문제를 안고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시대상을 잘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통찰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단순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로 깊은 사고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들보다 생각을 많이, 그리고 깊이 해야 하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행위를 통해 헤세는 마음의 평온과 기쁨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어쩌면 단순히 취미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헤르만 헤세처럼 위대한 작가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런 일(혹은 취미)은 꼭 필요하다. 꼭 정원 가꾸기가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다거나 생각을 정돈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마음이 조급할 때면 좀처럼 읽히지 않았다. 소설의 경우(개인에게 흥미로운 내용의 소설이라면), 집중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그 안에 빠져들곤 하는데, 이 글은 성격이 무척 다른 글이었다.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앉아서 펼쳐야 비로소 읽어 나갈 수 있는 그런 책.


이 위대한 소설가에게서 아버지의 면모를 확인한 것은 소설 <싯다르타> 때부터였다. 그는 특히나 나 같은 사람, 그러니까 게으른 사람에게는 몹시 매몰차다. 헤르만 헤세 본인은 무척 부지런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게으른 사람 처지에서 볼 때,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면이 있다.


생각이 많다. 생각이 깊다. 두 문장은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른 걸 뜻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생각이 많을 뿐, 깊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참 값진 가르침을 받았다. 생각의 우물을 깊게 파 내려가려면 어지럽게 떠다니는 잡초 같은 생각들을 걷어낼 줄 알아야 한다. 정원을 가꿀 때처럼.


단순함의 미학도 배웠다. 사람은 지성 체이기 이전에 동물이다. 움직여야 하며, 뭔가를 생산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그런 단순한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어떤 문제로 몹시 괴로워할 때, 그런 기본적인 것들이 결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또, 쾌락과는 거리가 아주 먼 책이었다. 헤르만 헤세라는 사람이 쾌락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도 귀띔한다. 나는 30년이 넘도록 늘 쾌락과 함께였던 듯하다. 너무 오래 박힌 습관이라 그런지 때가 되면 쾌락 한 스푼이 꼭 필요하다. 여러 가지 오락거리들과 술, 담배, 밤 중의 유희들이 그렇다. 그나마 요즘은 절제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그런 것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작은 아이일 때 우리가 느낀 시간의 개념.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의 시간. 너무나 다르다. 우리가 왜 시간에 쫓겨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책임감, 해야 할 일. 그런 일이 이제는 지나치게 많다. 어릴 때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중요했다. 종일 그것을 반복해서 학습하고, 웃고, 울고, 우러나오는 대로 단순한 삶을 살았다. 나이가 들며 그런 즐거움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깊숙한 곳에나마 아직 그런 마음이 남아 있다면 좋겠다.


우리는 순수했던 시절의 자취를 찾아야만 한다. 나는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작년 여름에 소설 플롯에 관한 내용을 다룬 수업을 들었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마지막 장, 정원에서 보낸 시간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착상과 발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6운각 시(마치 산문과도 비슷하다)로 쓰인 그 글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떤 작은 하나의 생각을 굴리고 굴려 적당히 커다랗게 변하면, 마침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건축물처럼 소설도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이다. 소설 수업을 들을 때, 소설을 양산해내는 듯한 느낌을 받고 적잖이 침울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게 된 것이다. 책에서 그 대목을 읽으며 무척 행복했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어려운 책 한 권. 아닌 게 아니라 모르는 단어도 많고, 모르는 식물도 많아 사전을 너무 많이 뒤적거렸다. 원래는 잘 몰라도 대충 읽고 넘어가는 편인데, 이 책 만큼은 왠지 사전을 찾아보며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글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꼭! 다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그런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도 때가 오면 본능적으로 느끼지 않을까?






들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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