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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책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고독과 유머 사이

부엉개 2018. 4. 24. 15:37

<자기앞의 생>을 읽고 로맹가리를 알게 되었다. 아니면, 기억과는 다르게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했다는 식상한 광고 문구에 설득당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책에서 느낀 바가 많았다. 일말의 희망도 없어 보이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고아. 그 아이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로맹가리의 첫 책이 얼마간 지루하긴 했지만, 다음 책으로 안내할 만한 매력은 분명히 있었다. 해서 내가 읽은 로맹가리의 두 번째 책의 제목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이다. 몰랐는데 단편집이더라.






<자기앞의 생>을 집필한 로맹가리(에밀 아자르)보다 생기 넘치는 로맹가리를 만나볼 수 있었다. 글에서 이따금, 작가의 주체할 수 없는 젊은 향취가 묻어난다. 젊은이들이 흔히 가질 법한, 세상을 향한 조소 같은 것들. 불만스럽지만 혼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젊은 로맹가리의 뒤틀린 심사를 음미해 보자.


나 역시 사회에 불만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이래서 싫어, 저래서 안 돼, 하며 혼자서 칭얼거리는 게 전부였지만. 행여 내가 불평불만을 일삼는 사람이라서 작가의 글이 거울처럼 그런 모습을 비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불평만 늘어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데 반해 작가는 구체적인 시도를 했다. 그가 남긴 날카로운 글, 바로 이것이 그 산물이 아닌가 싶다. 그런 작가를 읽으며 문득 나도 얼른 무언가 해내고 싶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단편집이라고 하면 대체로 '가볍게 읽기 좋은 책' 정도의 이미지를 가진다. 이 책도 어느 정도는 그런 의미에 걸맞는 책이었다. 대신 삶의 자잘한 조각들을 로맹가리 만의 스타일로 가공했다. 하지만 상처를 재료 삼아 빚은 듯 느꼈던 <자기 앞의 생>과는 사뭇 다른, 색다른 시도가 엿보이는 단편집이었다.







로맹가리의 글에서 로알드달이나 보여 줄 법한 기발한 발상이 돋보인다는 것은 의외였다. 천재라고 불리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책에는 로맹가리의 특유의 나른함도 물론 존재했다. 지루한 걸 몹시 싫어하는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다. 잘생겨서 그런가?


로맹가리는 내게 고독의 아이콘이자 우울함의 멘토였는데, 그 생각을 조금 고쳐먹게 만든 책이 바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였다. 대체로 우울하긴 해도 로맹가리는 자신 만의 매력적인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글을 읽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는 종류의 유머 감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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