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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책

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 없이: 시는 어려워

부엉개 2018. 3. 10. 00:30

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최근 3년 사이 같다. 그런데 시집을 읽고 리뷰를 쓰긴 또 처음. 그전에 안도현이 쓴 시작법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를 읽고 후기를 적은 게 전부다. 원래는 의식적으로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시를 읽곤 했는데, 그러면 금새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서 지금은 화장실에서만 읽는다. 뒷간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머니에게 "안도현 아세요?" 물었더니 안단다. 이 시집도 누나의 추천으로 읽게 된 것이 떠올랐다. 유명한 사람이면 좋은 시를 쓰겠지? 좋은 글을 읽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보자! 하는 마음을 장전하고 시집을 펼쳤던 것 같다. 읽는 동안 시인들은 '순수' 라는 것을 갈고 닦는 법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사물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적어도 작가들 중 일부는 그것을 가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들을 정말로 가슴 깊이 이해하기는 어려워서 가끔 "와...!" 하며 감탄이나 하련다.


시를 오랜 시간 읽다 보면 나도 개미 눈곱 만큼은 그들처럼 사고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달라진 거라곤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사실 뿐이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 시간 시를 읽었다. 한 권을 다 읽는 시간이 그냥 오래 걸린다는 말이다. 아침마다 차가운 변기에 앉아 시집을 들여다 보는 짓을 30번은 해야 한권 쯤 읽나? 그러면 한 달? 아니다. 중간에 변비가 있는 날도 끼어 있을 테니 시집 한 권 읽는 데 한달이 넘게 걸린다.


시는 읽는 다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 곱씹는다는 말이 적당하다. 시를 빨리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것 같아 습관처럼 눈을 감고, 어떤 영상이라도 떠올려 보려고 애쓴다. 눈앞은 그저 캄캄하기만 하다. 


막상 <간절하게 참 철 없이>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먹는 거였다. 안도현은 시골 밥상에서, 특정 음식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고 고향의 향수도 느낀다. 사람을 생각한다. 또, 자연을 생각한다. 시골 밥상이라고 하면, 나는 별로 공감할 수가 없다. 시골이 없어서. 하지만 밥상을 통한 어머니의 사랑이라면 조금 이해가 가는 것도 같다. 글의 갈래를 막론하고 좋은 글이라면 시대를 관통하는 힘을 가진 것 같다. 향수와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 자연은 언제고 변하지 않을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 해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소설이나 시를 읽고 나서 해설을 아예 읽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모든 답은 작품에 있소." 위대한 작가 자신의 대답은 이런데, 해설자들은 위대한 작가를 딛고 올라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 작가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보는 것처럼 말하는 게 싫었다. 아니면 해설이 내 생각에 울타리를 치는 게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그 모든 게 내가 해설을 읽고 적잖이 영향을 받는 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작품도 한 사람의 생각(위대한 작가라도 우선은), 해설도 한 사람의 생각.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내가 오만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못한 것 같아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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