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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로그
“당신은 세상에 대해, 당신 자신에게 무심했으므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사는 남자다. 한 사람의 무심함과 사회의 부조리가 얽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몬다. 과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도 읽었는데, 이방인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재미있는 소설이 좋다. 나를 재발견할 단서를 제공하는 소설. 그러려면 뭔가 쇼킹하고 다소 짜릿함도 필요하다. 어쨌거나 결국 ‘이방인’에 몰입하긴 했다. 처음에는 지루했지만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뫼르소와 친해졌고, 차츰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무심함에 가장 큰 분노를 느낀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어떤 형태로든 타인이 반응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행여 그것이 부정이라 하더라도. ‘무심’은 ‘부정’보다도 한..
문장과 문장 사이, 혹은 문단(단락) 사이, 아니면 글 전체가 여백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글은 글 전체의 여백이 풍부한 글이다. 필자의 잡념으로 가득찬 글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무겁다. 좋은 문장에는 긴장감이 깃들어 있다. 문장에 압도되어 천천히 읽게 된다. 나아가 글 전체에 적절한 여백이 스며있어 단단히 묶인 느낌이 든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이 내게는 그랬다. 억지로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들, 그중 미묘해서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담겨있다. 하나의 이야기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때로는 카버의 글이 마냥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내 독서나 삶의 깊이가 부족한 탓이리라. 처음..
스포일러 조금. 미친! 장르 파괴 오진다. 로맨스, 스릴러, 추리, 공포물이 공존한다. 사람이라는 복잡미묘한 동물을 제법 잘 표현했다.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고 여기는 점에서 보면 누구나 미치광이의 기질을 조금은 가지고 있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현실에서도 분명 범죄는 존재하고, 범죄자 역시 거리를 활보한다. 전과자=나쁜놈, 살인자=굉장히 나쁜놈. 이렇듯 옛날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사람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삶 속에서 된통 당해가며 깨달았다. 굉장히 나쁜 놈들도 되도록 감옥에 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죄’라는 과정과 ‘수감’이라는 결과가 있다. 우리는 어떤 범죄자가 죄를 지었다는 점, 그리고 결국 수감되었다는 점에만 주목한다. 그에게 어떤 이유가 있었고, ..
알고 보니 김영하 산문집 3종 세트에는 순서가 있었다. ‘보다-읽다-말하다’ 나는 ‘읽다’를 먼저 읽고 그다음 ‘보다’를 읽었다. ‘읽다’가 주로 고전 얘기라면, ‘보다’는 영화와 드라마가 반찬이다. 역사적 사건을 들추거나 경험을 슬쩍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건 후식. 역시 이 책도 김영하 작가의 독자적인 시선이 돋보인다. 재미있게 술술 읽긴 했는데, 책을 덮고 딱히 기억나는 건 없었다. 그저 내가 가진 생각을 확인하는 차원의 독서였달까. 작가와는 띠동갑 넘게 나이차가 나는데도 겹치는 영화, 드라마가 많아 신기했다. 지금이야 나도 웬만큼은 나이를 먹은 터라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작가가 들먹이는 대부분의 작품이 내게는 피 끓을 나이에 본 것들이었다. 주인공의 거친 말투와 옷차림, 섹..
유혹하는 글쓰기가 스티븐 킹의 책으로는 처음이었는데, 처음에는 사실 '뭐 이런 허풍쟁이가 다 있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재미는 있었다. 나도 소설을 끄적거리는 처지에서 보면 황당무계한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 같았다. 형편없는 작가는 괜찮은 작가가 될 수 없고, 괜찮은 작가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다니. 그래도 재미는 있으니 끝까지 다 읽긴 했다. 이것이 처음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은 독후감을 간추린 내용이다. 처음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을 당시에는 이따금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이 책이 내 글쓰기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은 내 독서 습관이 문제였던 것이다. 우연히 취향에 잘 맞는 한 권의 소설을 만나고, 몇 권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꽤 오랜 시간 의무적인 독서가 나를 따라다니며 괴..
오프닝부터 남달랐던 드라마, 우리나라에 이런 드라마가 있었던가. 오락 요소, 판타지, 인간 내면의 성찰까지. 중반부가 지나면서 늘어지는 부분이 곳곳에 드러났지만, 장점으로 무마할 수 있는 정도였다. 요즘은 여배우의 미모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캐릭터에 매료되어 드라마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 알함브라의 유진우(현빈) 역시 끝내주는 캐릭터였다. 소설 수업 중 기본적인 서사 구조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는데, 문득 그게 떠올랐다. 주인공이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이 그것이다. 주인공을 왕자라고 정하고 왕자에게는 성이라는 목적지를 설정한다. 왕자에게는 처음에는 미처 몰랐던 장애물이 하나둘 나타나고, 장애물은 차츰 더 난해해진다. 왕자는 불굴의 의지로 마지막 장애물까지 헤쳐 나간다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
김영하 작가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스토커 같은데.. 한 작가의 책을 두 권 이상 읽는 것은 호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혹은 의심이거나. 책을 덮은 지금, 여전히 김영하라는 사람에게 가졌던 호감과 의심이 줄다리기 하고 있다. 읽다-보다-말하다 세트 중 읽다, 보다는 아는 동생에게, 말하다는 누나에게 빌렸다. 보통 1-2-3처럼 순서가 정해진 책은 순서대로 읽겠지만, 김영하의 산문집처럼 개개의 이야기인 경우에는 내 멋대로 순서를 정한다. 아는 동생에게 빌린 책을 먼저 반납하고 싶은 마음에 읽다와 보다를 먼저 읽기로 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이후 곧장 '읽다'로 미끄러져 들어왔는데, 책을 덮고서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은근히 느껴지던 불편한 감정의 출처를 드..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은 뒷맛이 쓴 음식과도 같은 책이었다. 나는 책을 덮었을 때 충만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 좋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한편, 뒤끝이 쓴 소설이 대한민국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집의 처음 두 편인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를 읽고서 몇 달, 책을 덮어 두었다. 최근 들어 다시금 오직 두 사람을 펼쳐 단숨에 읽었다. 소설을 읽고서 문득 김영하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김영하 작가에 대해서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 머릿속에 김영하라는 사람은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글쓰기 책에서 그의 인터뷰를 보고는 내가 가졌던 생각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러고서 그의 소설집 오직..
극작품에 호감을 느끼는 데까지 책 다섯 권 분량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다행은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이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민음사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해설을 살펴보면 있음과 없음, 비워내기, 이분법적 사고, 극적 공과 같이 난해한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을 일일이 설명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나름 이해는 가도, 설명하려고 하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일 게 불보듯 뻔하다. 나름의 이해와 보편적인 이해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그래서 언제나 그렇듯, 내 수준을 고려한 눈높이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극작품, 리어 왕에 관한 썰을 풀도록 하겠다. 내게 극작품이란?리어 왕 전까지는 '필독 도서.' '어려운 책.' '지루해. '졸려.' 등이었는데, 리어 왕부터는 생각..
글쓰기가 한 권의 책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은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책들이 한 권의 책으로 글쓰기가 확 나아질 거라는 사기를 치고 있는데, 그런 책은 믿고 걸러도 좋다. 이런 형국이라서 나는 글쓰기 책에 얼마간 피로를 느껴 멀리하곤 했다. 책 한 권으로 글쓰기를 잘할 수 없다는 말에 많은 사람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대신, 글을 잘 쓰는 길로 가는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책은 종종 눈에 띈다. 나는 고전을 좋아한다. 내가 고전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을 기록했다는 점이 특히 좋다.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라는 책이 고전이다, 혹은 아니다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뚜렷하게 제시할 수는 없지만, 책이 출간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