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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로그
스포일러 조심. 조셉 고든 레빗이 등장하는 영화를 몇 편 봤다. 그동안 배우를 보고 영화를 고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500일의 썸머는 그래서 고른 영화는 아니었다. 제목이 독특해서 그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작품이다. 톰(조셉 고든 레빗)은 카드에 들어갈 카피 쓰는 일을 한다. 그가 다니는 회사에 썸머(주이 디샤넬)라는 비서가 새로 들어온다. 톰이 썸머에게 반하는 뻔한 스토리지만 구성이 색다르다. 썸머와 함께한 500일이 톰한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인데, 1일부터 500일까지의 시간이 랜덤으로 재생된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톰과 썸머는 여느 연인처럼 만나지만 썸머는 둘의 관계가 좀 껄끄럽다. “네가 좋긴 한데.. 사귀는 건 싫어.” 썸머는 말한다. 톰은 답답하다. 하지만 썸머가 왜 그러는지..
딱딱하지만 부드럽다. 관념적이지만 삶에 닿아 있다. ‘데미안’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번 새로운 울림이 있는 책이었다. 때로는 읽다가 지루해져 눈이 감기기도 했지만, 어느 날 다시 책을 펼치면 새로운 예감이 몸을 감쌌다. 헤르만 헤세와 영혼이 닮은 사람만이 데미안을 흥미롭게 읽었을까? 아니다. 이 소설은 인간이 가진 영혼의 동질성을 말한다. 얼마나 깊이 내면의 우물을 파고 들어갔기에 거기까지 갔을까.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모르는 어린아이에 머물러있다. 소수만이 이런 관념을 꽤 상세히 이해하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나는 한 사람의 본질이 무수한 조각으로 쪼개져 세상에 흩어져 있다고 믿는다. 인생은 조각을 찾고, 맞춰가는 여정이다. 보다 많은 조각을 회수하고 ..
‘1Q84’를 읽는 동안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내내 이 소설만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다른 책도 몇 권 읽고, 소설도 썼다. 힘든 시간과 평안한 시간을 나누어 보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읽어서 그런지 소설이 몹시 길게 느껴졌다. 지금껏 내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세계관은 의식과 무의식 세계로 나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그랬고, ‘해변의 카프카’와 비교적 최신작인 ‘기사단장 죽이기’도 마찬가지였다. ‘노르웨이의 숲’은 리얼리즘 소설로 내면의 성장을 다룬다지만, 껍데기만 다를 뿐 결국 소설이 가진 맥락은 비슷하다고 느꼈다. 작가의 스타일 같다. 이번에 읽은 ‘1Q84’ 역시. ‘1Q84’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조지 오웰의 ‘1984’ 오마주다. 소설 내에서 조지 ..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대체로 인간의 ‘모자람’을 인정한다. 나의 모자람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해 방황할 때 소설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덩달아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호의적이다. 물론 소설이 마음에 들어야 그렇겠지만. 인터뷰 작가의 소설을 한 권이라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이 더 재미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소설가’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작가란 무엇인가’는 3권까지 나왔다. 오늘의 인터뷰이는 오르한 파묵이다. 파묵은 안 그래도 유명한 데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터키의 소설가다. 책에 실린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정리했다. 우선 터키 민족주의 언론에 대한 불만. 나는 터키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민족주의란 키워드에는 그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민족주의라면 우리나라도 뒤지..
스티븐 킹의 책은 ‘유혹하는 글쓰기’가 처음이었다. 오래 된 일이다. 이 책을 총 세 번쯤 읽었는데 처음에는 그저 그랬다. 시답잖은 자기 얘기만 늘어놓은 책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자기 얘기 말고 무슨 얘기를 더 하랴. 잘 모르는 얘기를 자기 얘기마냥 하는 사람은 허풍쟁이일 뿐이다. 좋은 글쓰기를 표방한 여느 책들보다 더 오래 갈 글쓰기 책이라 생각한다. 굳이 글쓰기에 포커싱을 맞추지 않더라도, 솔직 담백한 산문으로 괜찮다. 이 책에 더욱 빠져든 계기는 스티븐 킹의 소설집 ‘악몽을 파는 가게’ 때문이었다. 작가한테 호감이 생기니 ‘유혹하는 글쓰기’도 다르게 읽히더라. 스티븐 킹이 가진 ‘공포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내게는 무색했다. 그전부터 영화 ‘캐리’, ‘미저리’, ‘샤이닝’ 등의 원작자가..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등장해 핫한 키워드가 된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유행이야 어찌됐든 자존은 중요한 문제다. ‘자존감’은 ‘자존심’과 사뭇 다른 뉘앙스로 쓰이곤 하는데 사실 자존감이든 자존심이든 ‘자존’의 의미는 같다. 허무하다. 그렇지만 특정 단어가 사람들 인식에 어떻게 박였는가는 의사소통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쨌든 나는 단순하게 ‘마음’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건강한 마음. 삶에 있어 마음의 건강은 몸의 건강만큼이나 중요한데, 우리는 때때로 그런 사실을 망각한다. 책에 좋은 내용이 많아 수긍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많은 책에서 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자존감 수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이 말이 좀 못마땅하다. 애초에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
소설을 읽으며 한 마리 곤충이 된 기분을 상상했다. 윽, 벌레 그만 때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벌레 학살자다. 같은 언어로 말하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험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 같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갑충으로 변한 뒤 인간의 언어를 차츰 잃으며 얼마간 인간성도 잃어간다. 사람이 얼마나 다른가 하는 풍자로 볼 수 있다. 또한 본능적인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송’보다 짧은 단편 소설임에도 임팩트 있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나를 생각해 보았고, 이 개념을 사회구성원인 나로 확장할 수도 있다. 본질적인 나에 관해서도. ‘변신’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운 좋은 사람이야 훌륭한 아버지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변신에 등장하는 아버지처럼 미성숙한 아버지를 뒀다. 고집..
아주 오래전 책의 제목만 보고 골랐던 책이다. 최근 다시 읽었다. 과거에 흥미롭게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람은 결국 책보다 자신의 관점을 더 믿어야 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반드시. 훌륭한 책이라도 다시 읽게 되면 미심쩍은 구석이 보이게 마련이다. 이럴 때는 한 번쯤 독서를 멈추고 생각해봐야 한다. 해라, 해라, 하는 책은 별로인데 이 책도 유난히 하라는 게 많았다. 책을 다 읽고 뭔가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책인데 이는 경험상 독서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자기계발서라면 흔히 발견되는 특징 같다. 많은 자기계발서가 부모님의 잔소리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그나마 좋은 자기계발서는 흥미로운 동시에 실생활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어야 ..
글이 너무 잘 읽혀서 당황했다. 단락 하나가 한 페이지를 잡아먹는 것은 예사고, 등장인물의 대사가 한 페이지를 넘을 적도 많은데. 페이지를 빽빽하게 채운 답답한 모양새와는 달리 술술 읽힌다는 점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오해를 만나며, 또한 바로잡게 된다. 오해는 외부에 의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내부에서 시작되는 오해가 더 치명적이다. 그밖에도 개인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어려움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 ‘소송’을 통해 개인의 오해와 착각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요제프 K는 거만하고 냉소적인 면을 가진 젊은이로 얼마간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소설은 젊은 날에 이른 성공을 거둔 젊은이의 지표로 요제프를 꼽고, 그 안으로 들어가 속사정을 파헤친다. 막..
설레는 가슴을 안고 책을 펼쳤다. 읽다 보니 잘 구성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스만제국의 세밀화가 이야기였다. 오스만제국? 중학교 수업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다. 한편 러브스토리와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추리 소설적 측면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며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액자 형 구성으로 딸린 이야기가 많다. 표면적으로 흘러가는 스토리라인과는 별개로 여느 훌륭한 소설이 그렇듯, 내부의 보이지 않는 줄기도 느껴졌다. 평소 소설만은 일부러 천천히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이 소설은 따로 노력이 필요 없었다. 읽히는 게 너무 더뎌서 읽기 능력을 의심할 정도였다. 중간에 시험 삼아 아껴두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펼쳤는데 내 능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단순히 어려운 소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