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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로그
최근에 재미있게 읽고 한 번 더 훑어본 뇌 과학 책이었다. 이 책이 왜 이렇게 흥미로웠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뇌가 그러그러하니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것보다 조금 더 말랑말랑하긴 했지만. 그동안 무의식 깊은 곳에서 빛을 보지 못하던 무형의 것들이 얼마간 실용적인 것으로 탈바꿈한 기분이 든다. 즉, 뇌를 읽다라는 책이 내 무의식에 먼지처럼 흩뿌려진 일부를 빨아들이는 청소기 역할을 한 것 같다. 막연한 진실 하나가 있다고 가정하자. 나는 그것을 다방면으로 이해하려는 무수한 노력이 따랐을 때야말로 무형의 진실이 본연의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나는 답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열심히 출근해서 돈을 벌고, 결..
4년 전 읽고 적잖이 영향을 받았던 책이다. 최근 다시 읽어 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사각지대가 보이는 느낌? 사람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사람의 열 가지 장점보다는 한 가지 단점을 찾아내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대할 때만은 더없이 관대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4년 전에는 책이라는 물건의 정체성을 제대로 몰랐었다. 책의 정체는 둘째 치고 나의 정체성을 몰랐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겠지만. 책의 맹점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았다. 이 두 가지는 사람에 따라 사소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첫 째. 책에서 자주 인용했던 속담 중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독자는 으레 주인 역할만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대도서관. 그 닉네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취업준비를 하던 때였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당시 나는 그를 전혀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유튜브가 대중화 되면서, 또한 유튜브 영상을 올리고부터는 모르고 싶어도 모르기 어려운 인물이 대도서관이었다. 평소 책을 밥 먹듯 사는 누나 덕택에 집안 곳곳에 책 광고 전단이 굴러다닌다. 나 역시 책에는 호기심이 있는 편이라 책 전단지만은 훑어본다. 거기에 ‘유튜브의 신’ 광고가 적혀 있었다. ‘나는 1년에 17억 번다!’ 이렇게. “카피가 이게 뭐야. 사려다가도 말겠네.” 내가 말했다. 누나가 멋쩍은 미소를 띠었다. 알고 보니 집에 유튜브의 신이 있었다. 가볍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 자기계발서. 하지만 초중반은 에세이 느낌으로 쓰였고, 대도서관이라는 캐..
내가 어떤 종류의 독후감을 쓸 수 있을지 더 명확해진 기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우물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우물. 소설가는 우물 안에 들어가 물을 떠 오는 사람이다. 귄터 그라스는 제법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온 듯했다. 너무 깊은 곳에서 떠다 나른 물은 얼음처럼 차가워서 좀처럼 마시기 어렵다. 양철북이 내게는 그랬다. 물의 참맛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소설마다 퍼 올린 물의 온도가 다르다. 소설을 고를 때는 자신의 체온과 비슷한 작품을 고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약간은 더 차가워도 괜찮겠지만. 나는 스스로 너무 과신해서 단번에 어려운 책을 펼쳐 들곤 했는데, 왜 그때마다 책을 덮어야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양철북이라는 깊은 우물물을 절반쯤은 다시 뱉어내며 마셨다...
‘말하다’를 끝으로 김영하 최신 산문 삼부작을 다 읽었다. 작가는 젊은이들의 막막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했다. 비판보다는 칭찬이 필요하고, 누구나 가슴 속에 ‘어린 예술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 예술가라. 가능성만을 생각하면 사람이 모두 대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상황과 환경이 다를 뿐. 산문은 단연 우리 것이 좋다. ‘말하다’를 통해 다시금 그런 생각을 곱씹었다. 언어적 미묘함 때문일 것이다. 번역서와 우리나라 작가의 책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 반대로 우리 작품을 수출하는 데 있어서도 고유한 문체가 훼손되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작생인 동시에 막막한 처지의 한 젊은이로서 위로 받았다. 5년 동안 습작과 일을 병행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소소한 시도가 있..
“밥 먹고 OO만 하면 누가 못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과거에는 나도 자주 쓰던 말이다. 나는 그동안 이 말을 몇 번, 행동으로 옮겼다. 밥만 먹고, 혹은 끼니도 거르고 PC게임을 했다. 마찬가지로 종일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나는 프로게이머가 되지 못했고, 영화감독이나 평론가는 물론, 여느 일에서도 내로라할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5년째인데 등단은 세상이 지어낸 허구처럼 느껴진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하나 달라진 것이 있었다. 관점.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며, 영화를 보며, 일하며,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다가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왜 노력해도 안 되는 걸까. 노력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재능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걸까...
책을 덮고,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유능한 창작 코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릭 메이젤. 25명의 창작자와 그들의 고민에 따른 코치의 혜안이 담긴 책이다. 선생의 지혜로운 코멘트를 살짝 엿보기로 하자. 가장 중요한 일을 필두로 2주간의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실행한다. 결과를 보고한다. 피드백 후 다시 3주간의 계획을 세운다. 코치의 요구 사항이 꽤나 간단해서 착각하기 쉽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결과, 절대로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았다. 나의 경우, 하고자 하는 일이 비교적 명확한데도 그랬다. 정신없이 삶에 치이며 하루하루 보내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우리는 누구나 꿈이 있다. 삶에 찌들어 잊고 지낼지언정. 결혼, 아이들, 직장, 인간관계 등의 행복을 위한 요소가 문득 삶의 커다란 장애물로 느껴진..
소설가는 소설 같은 삶을 산다. 좋은 소설은 본인의 삶을, 그중에도 반드시 값진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부가 캐릭터의 자양분이 되고, 내면의 깊은 숨결이 그가 쓰는 글자에 아로새겨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심, 그것. 누구나 진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나 소설가의 자질을 갖고 있다. 스스로 그 사실을 잘 모를 뿐. 여남은 형제를 가졌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아톰을 그린 작가는 데즈카 오사무다. 헷갈리지 마시길. 형제가 많다는 것은 그 수만큼 부모의 사랑을 쪼개 가져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9남매인 우리 아버지도 삶에서 많은 결핍을 드러낸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 수양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다 이해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시대가 다른 탓에, 다른 현실을 ..
처음부터 가벼움은 긍정, 무거움은 부정 따위의 철학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렇다. 철학을 가미한 소설이다! 아, 골이야.. 소설과 철학이 서로 떼 놓기 어려운 관계이긴 하지만, 쿤데라 씨는 대놓고 소설 안으로 치고 들어와 관념적인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할 말이 무척 많은 사람 같았다. 덕분에 우리가 소설을 읽는 동안, 원하든 그렇지 않든 작가의 친절한 설명과 늘 함께하게 된다. 자체 해설인지라 뒤에 딸린 해설이 없다는 점은 참 좋다. 주요 등장인물은 토마시-테레자, 프란츠-사비나 이렇게 네 사람이다. 짝 지운 대로 커플인데 토마시와 사비나도 연인 관계다. 말하자면 삼각관계. 토마시, 사비나는 서로 바람을 피우니 억울할 것도 없지만,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슨 죄란 말인가! 큼큼. 어쨌든 인물 관계..
사람들은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문장을 고민한다. 고민이라는 단어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고민하는 사람은 언제든 더 나아지게 마련이니까. 문장 능력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데, 나는 이 책이 꽤 두터운 독자층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문법의 중요성을 느끼고는 두 달가량 교정교열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꽤 흥미로웠는데, 수업과 이 책이 상당부분 겹친다. 20년 간 교정교열에 몸담은 프로의 책. 문득 교정교열 선생님이 저자의 다른 책인 ‘동사의 맛’을 언급한 것이 떠오른다.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는 실수를 되짚어 볼 계기를 마련하고, 미숙한 사람에게는 기초를 탄탄히 하는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어쨌든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읽어서 손해 볼 것 없겠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