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로그
처음부터 가벼움은 긍정, 무거움은 부정 따위의 철학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렇다. 철학을 가미한 소설이다! 아, 골이야.. 소설과 철학이 서로 떼 놓기 어려운 관계이긴 하지만, 쿤데라 씨는 대놓고 소설 안으로 치고 들어와 관념적인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할 말이 무척 많은 사람 같았다. 덕분에 우리가 소설을 읽는 동안, 원하든 그렇지 않든 작가의 친절한 설명과 늘 함께하게 된다. 자체 해설인지라 뒤에 딸린 해설이 없다는 점은 참 좋다. 주요 등장인물은 토마시-테레자, 프란츠-사비나 이렇게 네 사람이다. 짝 지운 대로 커플인데 토마시와 사비나도 연인 관계다. 말하자면 삼각관계. 토마시, 사비나는 서로 바람을 피우니 억울할 것도 없지만,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슨 죄란 말인가! 큼큼. 어쨌든 인물 관계..
초등학교 운동회가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청군백군을 나누는 표시로 이마에 청색과 흰색 띠를 맸는데, 요즘은 어떻게 하려나. 나는 백군이 좋은데 맨날 청군만 걸렸던 기억도 난다.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처박혀 있는 흰색 볼캡 덕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돈 주고 산 모자를 짱박아 두는 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어떻게든 쓰고 나가려고 이리저리 옷을 입어 본다. 딱히 안 어울리는 옷은 없는데. 이거다! 할만큼 어울리는 옷도 없다. 영락없는 운동회의 백군 이미지. 스나웃-SNOUT 야구모자
사람들은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문장을 고민한다. 고민이라는 단어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고민하는 사람은 언제든 더 나아지게 마련이니까. 문장 능력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데, 나는 이 책이 꽤 두터운 독자층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문법의 중요성을 느끼고는 두 달가량 교정교열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꽤 흥미로웠는데, 수업과 이 책이 상당부분 겹친다. 20년 간 교정교열에 몸담은 프로의 책. 문득 교정교열 선생님이 저자의 다른 책인 ‘동사의 맛’을 언급한 것이 떠오른다.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는 실수를 되짚어 볼 계기를 마련하고, 미숙한 사람에게는 기초를 탄탄히 하는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어쨌든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읽어서 손해 볼 것 없겠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TV를 보다가 문득 옷을 사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면자켓도 그래서 샀다. 내가 본 드라마 속 재킷은 남자 주인공의 어리숙함마저 매력으로 바꾸는 마법의 옷이었다. 그 옷을 보다 정확히 묘사하면 이렇다. 군데군데 바랜, 헐렁한 초록 빈티지 면자켓. 결과적으로 내가 구매한 제품은 그와 사뭇 다른 디자인이었다. 문제의 그 재킷과 비슷한 디자인이 없어 조금씩 양보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만족하며 입고 있으니. 아마 남주가 입은 재킷은 명품이라 터무니없는 가격이리라. 나는 비싼 옷이 싫다. 고럼고럼. 사용감이 묻어나는 빈티지 면이 아닌, 코팅이 들어간 면이라는 점과 깃에 코르덴이 들어간 것만 빼면 비슷하다. 그냥 그렇게 자위하는 걸로. 또 모른다. 10년쯤 입으면 비슷해 질지도. 10개년 ..
“당신은 세상에 대해, 당신 자신에게 무심했으므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사는 남자다. 한 사람의 무심함과 사회의 부조리가 얽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몬다. 과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도 읽었는데, 이방인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재미있는 소설이 좋다. 나를 재발견할 단서를 제공하는 소설. 그러려면 뭔가 쇼킹하고 다소 짜릿함도 필요하다. 어쨌거나 결국 ‘이방인’에 몰입하긴 했다. 처음에는 지루했지만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뫼르소와 친해졌고, 차츰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무심함에 가장 큰 분노를 느낀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어떤 형태로든 타인이 반응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행여 그것이 부정이라 하더라도. ‘무심’은 ‘부정’보다도 한..
후리스, 패딩조끼 하면 유니클로가 떠오른다. 과거 그곳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이려나. 어쨌든 별로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차츰 유니클로의 옷값이 오르는 걸 보며 '왜 사람들은 여전히 저기서 옷을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자기들 돈으로 자기네가 산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다. 아니나다를까 이번 설에 작은아버지 내외가 유니클로 옷으로 도배를 하고 왔더라. 패딩조끼, 점퍼, 코트에.. 놀라운 점은 그분들이 값비싼 물건을 좋아하고 즐겨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경량 패딩조끼가 필요하다던 누나를 위해 패딩조끼를 주문했다. 누나는 처음에 유니클로 패딩조끼를 사려고 했는데, 내가 말렸다. 눈여겨 본 패딩조끼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와는 따로 살고 있는데, 내가 먼저 물건을 받아 전해 주는 방식이다. 불량이 있을..
문장과 문장 사이, 혹은 문단(단락) 사이, 아니면 글 전체가 여백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글은 글 전체의 여백이 풍부한 글이다. 필자의 잡념으로 가득찬 글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무겁다. 좋은 문장에는 긴장감이 깃들어 있다. 문장에 압도되어 천천히 읽게 된다. 나아가 글 전체에 적절한 여백이 스며있어 단단히 묶인 느낌이 든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이 내게는 그랬다. 억지로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들, 그중 미묘해서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담겨있다. 하나의 이야기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때로는 카버의 글이 마냥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내 독서나 삶의 깊이가 부족한 탓이리라. 처음..
군 시절 지긋지긋하던 방독면 가방이 떠오르는 디자인이다. 훈련소에서 눈물 콧물에 침까지 질질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방독면 가방보다는 메신저백과 더 닮은 가방인데 이런 생각이 드는 영문은 모르겠다. 원래는 커다란 백팩을 사려다 그만두었다. 배낭여행 갈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진 가방 중에는 책 한두 권 들어갈 만한 크기가 많은데, 이 가방 역시 그쯤 넣고 다니기 적당하다. 웍스페디션-WORKS PEDITION 전술 슬링백
스포일러 조금. 미친! 장르 파괴 오진다. 로맨스, 스릴러, 추리, 공포물이 공존한다. 사람이라는 복잡미묘한 동물을 제법 잘 표현했다.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고 여기는 점에서 보면 누구나 미치광이의 기질을 조금은 가지고 있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현실에서도 분명 범죄는 존재하고, 범죄자 역시 거리를 활보한다. 전과자=나쁜놈, 살인자=굉장히 나쁜놈. 이렇듯 옛날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사람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삶 속에서 된통 당해가며 깨달았다. 굉장히 나쁜 놈들도 되도록 감옥에 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죄’라는 과정과 ‘수감’이라는 결과가 있다. 우리는 어떤 범죄자가 죄를 지었다는 점, 그리고 결국 수감되었다는 점에만 주목한다. 그에게 어떤 이유가 있었고, ..
양말을 돈 주고 산 적 있던가. 화사한 색감과 저렴한 가격에 취해 최면에 걸린 듯 주문했다. 양말은 패션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달 전, 혹은 1년도 더 지난 일일지도 모르겠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양말을 주워 신고 나간 날이었다. 양말은 초록색에 하얀 줄무늬가 들어간 디자인. 그날 뭐하러 나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양말 때문에 하루 종일 신경 쓰였던 것만은 기억난다.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문득 내가 양말을 구매한 이유가 그 일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슈퍼베이직-SUPERBASIC 컬러 골지 양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