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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행복의 단서

부엉개 2020. 2. 8. 19:29

이 책은 2009년 세상을 떠난 비비안 마이어를 추적하고, 그녀가 찍은 사진을 선별해서 담은 책이다.

 

비비안 마이어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의 어마어마한 자산이 세상에 공개됐다. 마이어는 삶을 떠나기 직전까지 찍고, 보관하고, 생활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조금이나마, 스스로 예술가라고 여겼다면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랐을 텐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마이어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이어는 찍는 행위만으로 커다란 만족과 위안, 혹은 재미를 얻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남은 단서라고는 그녀의 사진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가장 확실한 단서일지도 모른다. 사진을 통해서 그녀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지 상상해 보는 수밖에 없다. 몇 가지 팩트를 제외하고는 타인의 증언 밖에는 얻을 것이 없다. 증언은 결국 타인의 시선일 뿐이다.

 

 

 

 

 

몇 년 전에 마이어의 사진집을 펼쳤을 때는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했다.

 

 

 

 

마이어의 모든 사진에는 인물과 배경이 있다. 사진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딱히 거슬리는 사진이 없었다. 사진마다 주인공이 있고, 때로는 인물이 없는 사진도 있다. 사물이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사진을 찍는 마이어의 시선과 렌즈 안에 잡힌 사람들의 시선을 번갈아 상상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는 동안 알쏭달쏭, 의문만 쌓여갔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는 무수한 물음표가 찍혀 있다. 한편 내가 느끼는 것보다 삶이 단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이어의 프레임 안에서는 모든 사물이 공평해진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려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아이, 젊은이, 노인, 장애인, 인종과 상관없이. 사람, 건물 등과 같은 지형지물, 산과 나무들, 바다, 동물 간의 차이도 사라진다.

 

이따금 마이어는 유리나 거울에 반사되어, 혹은 그림자로 스리슬쩍 자신의 작품에 등장한다. 그녀의 장난기가 느껴진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음악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음악으로, 언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언어로, 또 수학으로, 과학으로, 그림으로. 자신이 영혼이 가장 자유로워질 수 있는 도구라면 무엇이든. 소통 없는 삶은 팍팍하다. 예술작품이란 이러한 개인의 고유한 감각을 가능한 한 극한까지 끌어내어 보다 자유롭게 세상을 읽어 낸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그 증거로 위대한 예술작품은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것을 감상하며 우리는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자유, 해방, 감동,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등을.

 

나는 대부분 소설에서 가장 큰 감동을 느껴왔다. 아쉬운 일이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서 큰 감흥을 얻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좀 달라지려나. 하지만 마이어가 예술가로 살다 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사진에서 조금이나마 삶의 단서를 엿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는 면과 보석처럼 빛나는 단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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