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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TV

덴마크 드라마, 리타: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

부엉개 2018. 2. 27. 00:30

늘씬한 여선생이 등장한다. 이름은 리타. 아무런 생각 없이 보기 시작한, 넷플릭스 추천 드라마 <리타>는 내 외국드라마 순위권에 단숨에 진입했다. 이 드라마 재미있다. 재미? 평범한 재미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으나, 내게는 흥미로운 덴마크 드라마였다. 그러니까 덴드 되시겠다.






뭔가 파격적인 내용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내용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속단은 금물. 평범한 사건과 인간관계가 '리타' 라는 캐릭터와 부닥치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말썽꾸러기 리타는 난잡한 데다 싸가지도 없고, 제멋대로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스럽다. 다 이유가 있다. 가끔 가다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따뜻함,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보다 더 남자답고 멋질 때가 많다. 대부분의 남자들 속 사정이 찌질하다고 친다면 리타는 무척 쿨~한 여자다. 100개의 허물이 있는 사람이 하나의 장점만으로 다른 모든 단점을 상쇄해 버릴 수도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인간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라는 주제만 가지고도 잘만 하면 수많은 상을 휩쓸고 환호를 받을 수 있겠지만, <리타>는 한 술 더 떠서 "인간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시도하는 것이 바로 삶이다." 라는 말까지 하는 드라마다. "결과가 정해져 있더라도 우리는 과정을 고민해야 한다." 고도 말한다. 이런 드라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리타



회가 거듭될 수록 차츰 리타가 예뻐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현실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일 같다.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리고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보았을 때 전혀 다른 인상을 느끼는 것처럼.


나이가 많다고 다 성숙한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리타도 그들 중 하나다. 어쩌면 무늬만 어른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숙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떠밀려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성숙하는 과정 중에는 스스로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도 포함된다. 겉으로 보기에 리타는 뭐든 다 해결할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런 부분이 내게는 현실적이고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 시대의 뚫린 입, 리타 선생. 그녀는 머릿속 생각을 지체없이 내뱉는 여자다. 그래서 손해도 많이 보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사는 게 그녀의 방식이다.





예르디스



아이들에 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직 미혼인 나는, 아이들의 잘못을 부모에게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떤 아이를 보며 그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그 부모를 덮어놓고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만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모든 아이든 우리든, 어쨌거나 삶은 모두에게 고되다.


리타에 나오는 사연을 주의깊게 보다가 문득 내 어린시절도 떠올랐다. 잃어버린 뜻밖의 따뜻한 기억을 찾게 되면 무척 가슴이 벅차오른다.





라스무스



리타는 좀 모자란 게 사실이다. 살아가며 필요한 여러 가지 기능을 걷어낸 대신, 인간성 하나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문란한 사생활이나 시건방진 태도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하며 차츰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러면 들끓던 감정이 거짓말 처럼 누그러든다. 분명 막장 드라마를 볼 때처럼 씩씩거리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리타를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에피소드 중 요나스라는 남자 캐릭터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전형적인 구시대적 남자의 리더상. 그를 보며 리타 같은 캐릭터가 미래의 리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까운 미래나 혹은 지금도 '리더' 라는 단어의 개념이 많이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이 시대가 바라는 리더란 만능 해결사가 아닌,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할 줄 알고 옆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싶은 일, 다르게 말하면 꿈. 꿈을 찾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우리는 때때로 지금과는 조금 다른, 아니면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전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몹시 어려워 보인다. 전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을 아예 무시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고. 과거의 나 역시 그때까지의 삶을 부정하며 내가 더 나은 사람이길 바랐다. 환경이 좋지 않았을 뿐이라고, 습관처럼 되뇌곤 했다. 그에 드라마 <리타>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살다 보면 끔찍한 생각과 비열한 행동을 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해피엔딩을 선물해 줄 드라마 리타.


아아아, 아, 아, 아아, 아아~(드라마를 보면 이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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