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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Mario Vargas Llosa: Pantaleon las visitadoras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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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Mario Vargas Llosa: Pantaleon las visitadoras

부엉개 2016. 12. 9. 22:29

 가볍게 보면 가벼울 수 있고, 파고들자면 복잡한 소설이었다. 구성에서는 전에 읽어 본 소설들과는 판이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문서를 주고받는 형식이 조금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각각 다른 장소와 인물 간의 대화가 한 단락씩 차례로 나열되며 상징성을 부여하는 특이한 구성도 보였다. 간결한 문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조금 난잡하다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무난하게 잘 읽히는 건 좋았다.






 독자의 처지에서 볼 때, 소설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인생이든 소설이든 재미있고 단순한 것이 좋다. 단순한 문제 둘이 만나면 그것도 단순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이 큰 재미로 드러난다. 군대, 그리고 군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한 남자. 군대라는 딱딱한 규율을 가진 집단이 특정한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내놓은 아이러니한 대안. 그것과 주인공이 부닥치며 부수적인 재미들이 탄생한다. 주인공인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는 올곧은 인물임과 동시에 복종밖에 모르는 외골수다. 판탈레온 대위가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 환경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자세히 묘사된다.


 군대는 곧 권력을 뜻한다. 권력 앞에 선 한 개인. 판탈레온 대위는 어떤 측면에서는 온실 속 화초로 군대 밖의 세상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의 심리적, 육체적 고뇌가 우리에게 계속해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모든 인간이 평생 이고 가야할 문제인 성(性)문제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소설이 시작되면서부터 전제로 깔린 것은 굶주림이다. '세탁부'라고 불리는 직업과 신흥 종교가 생겨난 걸 보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다. 삶이 고단하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필요한 법. 평민들의 육체적 결핍이 종교로 귀결된 것이다. 신흥 종교집단인 '방주의 형제들'에는 판탈레온의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다.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사건, 인물들. 그렇지만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들이 도화선이 되어 결말을 만들어 내는 이 소설은 정말로 집중해서 읽거나, 두 번, 세 번 읽어야 진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보람을 찾게 된다. 소설 속 약자에 속한 특별봉사대원들조차 그런다. 그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몸을 팔고,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경쟁하듯 특별봉사대에 지원한다. 이는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는 우리 시대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나이 서른이 넘었지만, 어려운 시절을 겪은 우리 어머니와 그 윗세대는 아직도 잘 먹고 잘살게 해 줄 만한 대통령, 기호 1번을 찍는다. 그 결과가 지금 이렇다. 우리 세대부터는 민주주의에 입각한, 평등하고, 부정 없는 사회를 꿈꾼다. 그렇지만 참여가 미흡했던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배부른 게 우선시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사상만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먹여야 할, 다루어야 할 육체가 있다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짐승은 먹이고, 재우고, 다른 욕구도 채워줘야 한다. 해줄 것이 너무 많다. 요즘 일부러 굶어가며 일할 때도 종종 있다. 내가 우월한 존재가 아닌, 당장 한 끼 먹지 않으면 배고픈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 주위에도 조금만 돌아보면 아직도 내일이 불안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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