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로그
셰익스피어 4대비극" 맥베스' 내적 중립이 빚은 비극 본문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이다. 그중 맥베스를 읽었다.
앞서 읽은 오셀로, 햄릿과는 다르게 마녀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것이 좋았다.
알쓸신잡에 나온 김영하 소설가가 그런 말을 했다. 극작품 중, 비극은 상류층의 실수를 통한 이야기가 많고, 희극은 평민들의 이야기가 많다는. 듣고보니 그럴 듯한 얘기였다. 실제로도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모두 상류층 이야기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정하고 썼다기 보다는 재미있게 써 놓고 보니 그렇더라,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살다 보면, 어떤 평범한 삶이라도 운명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비단 본인만의 감각일 경우가 많다. 맥베스의 비극도 마녀 자매의 예언이 씨앗이 되어 일어난다. 어쩌면 꽤 오랫 동안 중립을 지켰을 그의 심경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은 것은 마녀들의 '혀'였다. 전혀 다른 두 물질이 만나 폭발을 일으키는 것처럼, 그렇게 비극이 일어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책임은 뒤따르게 마련.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언제나 예상 가능한 결과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에서든 결과가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소설을 포함,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뒤늦게 극작품의 세계에 발을 들인 나로서는 고전 극작품이 좀 실망스럽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 문학이 통째로 싫어지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과거에 중립이 가장 큰 죄악이라는 말을 듣고 뜨끔한 적이 있었다. 속으로 발끈하기도 했다. 헌데 지금 생각해 보면 중립이란,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디로든 바뀔 수 있어서 그런 듯하다. 맥베스도 내적으로 중립을 지키던 사내였다. 만약 가치 기준이 보다 견고하게 확립되어 있었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중립이었기 때문에 외적인 요소인 마녀들에게 놀아나지 않았을까.
중립자는 대체로 생각이 많다. 맥베스는 계획적인 살인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환영에 시달린다. 그가 가진 야심에 이미 불이 붙은 터라 유혹을 이겨 내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실수이기도 했다. 왕을 죽인 뒤 괴로워하는 그의 독백에서 그것이 실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맥베스의 행동을 마냥 비판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과거의 나는 덮어놓고 비판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하는 쪽으로 얼마간 기울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게 마련이라서. 어느 시대든 비판자들은 단언하는 경향이 강한데, 무언가를 단언하는 사람은 쉬 믿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리타분한 극작품을 읽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실수, 속마음을 이해하려고 시도함으로 비슷한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과 사람에 대한 관대한 마음.
이제 네 권째 극작품인데 이제 그만 극작품에서도 '재미'라는 요소를 일깨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