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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오르한 파묵

부엉 군 2019. 7. 13. 16:39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대체로 인간의 ‘모자람’을 인정한다. 나의 모자람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해 방황할 때 소설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덩달아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호의적이다. 물론 소설이 마음에 들어야 그렇겠지만.

 

인터뷰 작가의 소설을 한 권이라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이 더 재미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소설가’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작가란 무엇인가’는 3권까지 나왔다.

 

 

 

 

 

오늘의 인터뷰이는 오르한 파묵이다. 파묵은 안 그래도 유명한 데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터키의 소설가다. 책에 실린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정리했다.

 

우선 터키 민족주의 언론에 대한 불만. 나는 터키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민족주의란 키워드에는 그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민족주의라면 우리나라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란 간단히 말해 국가 이기주의라고 보면 되겠다. 이기주의 자체가 시대적 키워드라 민족주의도 덩달아 깊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오르한 파묵의 작업 방식에도 주목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과 작업 방식이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없던 호감이 생겼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그랬고, 무라카미 하루키나 스티븐 킹도 매일 꾸준히 작업한다.

 

파묵은 하루 10시간 사무원처럼 일한다고 한다. 하루 10시간이면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소설만 쓴다는 말인데, 정신병에 걸릴까 걱정이다. 머리 굴리는 일이 직업인 사람은 알겠지만 하루 10시간 머리를 굴리고 앉아 있으면 머릿속이 좀 이상해진다. 파묵은 정신분열이 사람을 지적으로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나도 소설을 읽고 쓰며 가치관의 커다란 줄기가 바뀌었는데, 그 과정에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정신의 일부를 뜯어고치는 것은 적어도 신체의 일부를 꿰매는 것보다 훨씬 괴로운 일이다. 실체가 없어서 더 그렇다.

 

파묵의 소설은 ‘내 이름은 빨강’을 유일하게 읽었는데, 무 썰 듯 썰어 조각조각 이어붙인 듯한 소설이었다. 그는 거의 플롯을 짜서 쓴다고 인터뷰에서도 말했다.

 

 

 

 

 

소설 한 권으로 작가를 정의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지만 나는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며 진땀을 흘렸다. 소설에서 꾸며진 이야기라는 느낌, 그러니까 그런 티가 나면 읽기가 싫어지는데 성격상 절반쯤 읽은 소설을 덮어버리지도 못하는 터라 더욱 괴롭다.

 

‘내 이름은 빨강’을 읽고 삐죽 나왔던 입이 인터뷰를 읽으며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 빨강의 고난이 잊힐 때쯤, 파묵의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렸다는 ‘새로운 인생’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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