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로그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Zorba the Greek, Nikos Kazantzakis 본문
같은 책을 두 번 씩 읽으면 가끔 내가 뭐하고 앉아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다른 책 보다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든 책이다. 우선 책이 너무 두텁다. 문장도 어렵다. 나는 가볍게 과거를 회상하며 대충 책을 훑을 생각이었지만, 도무지 그게 잘 안 되어 책을 정독했다. 삼일 쯤 틈틈히 책을 붙들고 있었다.
책 제목에 그리스라는 글자가 들어가서인지, 크레타 해변의 하얀 건물과 드문드문 파랑이 섞인 지붕도 생각났다. 언젠가 꼭 그곳에 가보고 싶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주인공인 조르바와 그를 관찰하는 책벌레인 저자가 나온다. 조르바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것이 뭐가 됐든 싸지르고 보는 사내이고, 책벌레 저자는 사상으로 살아가는 백면서생이다. 책벌레는 자신의 삶 일부분에 환멸을 느낀다. 절친한 친구가 떠났다. 마음으로는 절친을 따라 나서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별과 함께 조르바가 나타났다.
조르바는 저자와 함께 그들의 사회를 구축해 나간다. 그곳으로 다 늙었지만 로맨스를 꿈꾸는 오르탕스 부인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속속 들어온다. 저자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행동이 주축이 되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바뀌고 싶어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나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책은 잊고 지내던 자신의 과거를 들추어 내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그려내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는 기쁨과 불안, 두려움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책을 읽으며 내게는 조르바의 일면도 조금 있지만, 관찰자인 책벌레 저자의 일면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혼자 생각하고, 기뻐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고독이라는 놈을 가장 친한 친구로 사귀고 있다. 고독은 내게 자주 쓸쓸함과 무료를 선물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사람처럼 내 마음을 찢어놓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고독과 함께 자주 내면의 심연으로 끌려들어 간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환희와 아울러 어두운 측면을 고루 말하고 있다. 여느 위대한 소설처럼 그 어두운 부분을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로 바꾸어 낸다. 거기에는 삶과 죽음이 있고, 비겁함, 욕정 따위도 있다. 책벌레 저자에 의해 조르바는 하나의 성인으로 희화된다. 기쁠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슬플 때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조차 조르바가 옳다고 가슴 깊이 믿는다. 그에 반해 저자는 자신의 속마음과 본능을 이성이라는 감옥에 가두는 데 능숙하다. 가슴은 조르바처럼 행동하라 이르지만, 머리가, 이성이 그 욕구를 억누른다.
"사람은 저마다 뱃속에 악마 몇 마리 쯤 가지고 살지요." 책벌레 저자가 한 말인데, 아직도 뇌리에 꽂혀있다. 뱃속 악마를 배불리 먹이지 않으면 그 악마는 우리의 머리를 장악하기 시작해 우리의 온 몸을 호령한다. 나도 많이 경험한 일이다. 조르바는 그 뱃속의 악마를 배불리 먹이는 데 아주 능숙한 사내다. 기쁘면 춤을 추고, 슬플 땐 눈물을 흘리며, 배고프면 배불리 먹는다.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 자체가 되려고 노력하는 그런 남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알 지 못하고, 정해진 것에 따라 움직이며, 때로는 사상의 노예가 된다. 그런 우리에게 조르바는 말하고 있다. "주어진 삶을, 오늘을 제대로 살아내지 않는 자에게 지옥이 기다릴 진저!"
우리 모두는 조르바와 책벌레를 섞어놓은 듯 생겨먹었다. 비율은 모두 다르다. 나는 조르바 3에 책벌레 7쯤 되는 것 같다. 조르바만 넘치면 미치광이가 될 우려가 있고, 책벌레만 넘치면 우울증에 걸리리라. 주변을 신경쓰느라 인생을 너무 많이 허비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의 가슴이 지금 말하고 있는 소리에 조금만 더 귀 기울여 보자. 그러면 반드시 어떤 소리가 들려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