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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로그
‘말하다’를 끝으로 김영하 최신 산문 삼부작을 다 읽었다. 작가는 젊은이들의 막막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했다. 비판보다는 칭찬이 필요하고, 누구나 가슴 속에 ‘어린 예술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 예술가라. 가능성만을 생각하면 사람이 모두 대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상황과 환경이 다를 뿐. 산문은 단연 우리 것이 좋다. ‘말하다’를 통해 다시금 그런 생각을 곱씹었다. 언어적 미묘함 때문일 것이다. 번역서와 우리나라 작가의 책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 반대로 우리 작품을 수출하는 데 있어서도 고유한 문체가 훼손되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작생인 동시에 막막한 처지의 한 젊은이로서 위로 받았다. 5년 동안 습작과 일을 병행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소소한 시도가 있..
알고 보니 김영하 산문집 3종 세트에는 순서가 있었다. ‘보다-읽다-말하다’ 나는 ‘읽다’를 먼저 읽고 그다음 ‘보다’를 읽었다. ‘읽다’가 주로 고전 얘기라면, ‘보다’는 영화와 드라마가 반찬이다. 역사적 사건을 들추거나 경험을 슬쩍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건 후식. 역시 이 책도 김영하 작가의 독자적인 시선이 돋보인다. 재미있게 술술 읽긴 했는데, 책을 덮고 딱히 기억나는 건 없었다. 그저 내가 가진 생각을 확인하는 차원의 독서였달까. 작가와는 띠동갑 넘게 나이차가 나는데도 겹치는 영화, 드라마가 많아 신기했다. 지금이야 나도 웬만큼은 나이를 먹은 터라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작가가 들먹이는 대부분의 작품이 내게는 피 끓을 나이에 본 것들이었다. 주인공의 거친 말투와 옷차림, 섹..
김영하 작가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스토커 같은데.. 한 작가의 책을 두 권 이상 읽는 것은 호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혹은 의심이거나. 책을 덮은 지금, 여전히 김영하라는 사람에게 가졌던 호감과 의심이 줄다리기 하고 있다. 읽다-보다-말하다 세트 중 읽다, 보다는 아는 동생에게, 말하다는 누나에게 빌렸다. 보통 1-2-3처럼 순서가 정해진 책은 순서대로 읽겠지만, 김영하의 산문집처럼 개개의 이야기인 경우에는 내 멋대로 순서를 정한다. 아는 동생에게 빌린 책을 먼저 반납하고 싶은 마음에 읽다와 보다를 먼저 읽기로 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이후 곧장 '읽다'로 미끄러져 들어왔는데, 책을 덮고서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은근히 느껴지던 불편한 감정의 출처를 드..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에서 자주 거론한 덕분에 알게 된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 마치 친한 친구가 새 친구를 소개해 준 느낌이었다. 친해지는 건 별개의 문제였지만. 레이먼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추리소설을 완성한 작가라고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그 하드보일드 문체 말이다! 그전부터 레이먼드 챈들러를 알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환영할 만한 책.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 형식으로 쓰였다. 작가와 독자가 소설 주인공인 필립 말로에 관해 의견을 주고 받은 내용도 있고, 전체적으로 작가 개인의 생각이 적잖이 드러난다.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칭얼거리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지인에게 보낸 편지를 편집해 책으로 만든 탓이려나. 나 역시 받아 주는 사람만 있다면 수시로 칭얼..
원래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했지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통해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까운 곳에서조차 제대로 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책에서 그런 부분을 충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책은 하루키 식으로 충실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문득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는 의미가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민 끝에 얼마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신뢰, 그리고 재미. 작가와 독자 간의 신뢰는 실제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확실히 시간이라는 자양분이 필요한 열매와도 같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일 수 있을지 모르고, 또 일부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
모처럼 우리나라 소설가가 쓴 책, 산문을 읽고 기분이 좋았다. 나와 얼마간 마음이 통하는 작가가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사실 좋다는 흔한 말로는 부족하지만, 그 외에 칭찬을 더해 본들 사족이 될 것 같다. 아껴가며 읽은 책이었다. 겉 표지가 두부 모양으로, 책이 꼭 한 모의 두부를 연상시켜 정겹다. 책을 읽을 때면 겉표지를 벗겨 놓고 읽는데, 의 겉표지를 벗기니 오돌토돌한 종이가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코를 들이대고 숨을 들이켰더니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완서 선생님. 연세 지긋하신 분이 쓴 글이지만 풋풋한 소녀 감성이 묻어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집안 얘기도 많이 나오고, 본인의 엉뚱한 생각과 사상도 제법 드러나 있다. 다른 세대를 살고 있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오래도 읽었다. 두 달쯤 책을 부둥켜안고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소설이 끼어들기도 하고, 다른 급한 일이 새치기를 하기도 했다. 때로는 원 없이 늑장을 부렸다. 그만큼 내게는 어렵기도 했지만, 몹시 지루하기도 한 책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고요함을 느끼게 해주는 산문. 헤르만 헤세가 실제로 정원을 가꾸며 보낸 시간 동안 적은 글들을 하나로 묶은 값진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수필은 처음이었다. 이름 모를 자연의 구성원들이 많이도 나온다. 식물도감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모르는 식물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글에서 작가의 소년 같은 마음과 고뇌를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헤르만 헤세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적잖이 지쳤을 것이다. 푸르디푸른, 젊은 영혼의 ..